카우보이들의 동성애를 담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 복합감정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동료 잭(제이크 길렌할)을 평생 사랑하게 되는 에니스 역을 맡은 히스 레저는 자기부정(‘나는 동성애자가 될 수 없다’)이라는 음지(陰地) 감정과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양지(陽地) 감정을 뒤섞은 복합적인 감정의 본질을 보여 주는 것이다(그는 올해로 겨우 27세다).
영화에서 에니스(아니, 히스 레저)가 가뭄 속 단비처럼 드러내는 6개의 위대한 표정. 그 속에 담긴 복합감정의 정체를 밝혀 본다.
○ 사랑+분노=아름다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떼를 치며 사랑을 나눠온 두 카우보이. 급기야 헤어져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순간이 왔다.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둘은 역설적이게도 주먹다짐을 벌인다. 왜? 그게 바로 카우보이들이 미칠 듯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니까. 잭과 몸싸움을 하다 찡그리는 에니스의 얼굴(사진①)과 잭을 떠나보낸 직후 구토하는 에니스의 표정(사진②)에는 △잭을 향한 뜨거운 사랑 △헤어짐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안타까움 △‘왜 내가 동성애자가 되고 만 걸까’ 하는 고통스러운 자책이 함께 배어 있다.
○ 사랑+은폐본능=잭과 헤어진 지 4년. 결혼해 딸 둘을 둔 에니스에게 “들러도 될까?” 하는 잭의 엽서가 배달된다. “꼭 들러(You bet)” 하는 단 한 줄을 엽서에 적어 편지함에 넣고는 막 돌아서는 에니스(사진③). 그의 표정에는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의 기쁨과 △남이 알까 두려운 은폐본능이 동시에 묻어난다. 하루 종일 창밖을 내다보다 드디어 잭의 모습을 발견한 에니스의 얼굴(사진④)에도 감격으로 빛나는 눈과 아내에게 진실을 들킬까 무서워 앙다무는 입, 이렇게 상반된 두 이미지가 경계 없이 동거한다.
○ 사랑+고통=“간절히 원해도 늘 기다림밖에는 주지 않는 너를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들다. 차라리 끝내고 싶다”는 잭의 다그침에 에니스가 휙 돌아서면서 보여 주는 얼굴(사진⑤)은 최고의 표정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더는 못 참겠어” 하는 에니스는 눈물을 쏟아 내는 동시에 참아 내는 것 같은 절묘한 표정으로 사랑과 번민이 섞인 자신의 감정을 처음으로 잭에게 드러낸다.
○ 사랑+확신=잭이 세상을 떠난 뒤 어느덧 홀로 중년이 된 에니스. 옷장 속에 간직해 둔 잭의 셔츠를 물기 있는 눈으로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사진⑥). “잭, 맹세해….” 이 마지막 표정에는 잭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다짐, 그리고 남자를 사랑한 자신의 선택을 결국 아름다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자기 확신의 감정이 모두 드러난다. 너무나 아프고 아름다운 사랑 고백.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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