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첫 내한 독주회에서 앙코르 곡을 10곡이나 쳤을 정도로 객석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35·사진).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세계음악계의 주목을 받아 온 그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 큰 찬사를 받는 데는 자만에 빠지지 않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엄청난 연습량이 숨어 있었다.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들이 대부분 공연 전날 들어와 연주만 하고 떠나는 것과 달리 키신은 첫 내한공연 사흘 전에 일찌감치 입국했다. 그는 사흘 동안 관광도 쇼핑도 외식도 없이 호텔과 예술의전당 연습실만 오가며 하루 6∼8시간씩 연습했다고 한다. 특히 8일 공연 당일에는 키신을 6세 때부터 30년 가까이 가르쳐 온 일생의 유일한 스승 안나 파블로바 칸토르(83) 전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원 교수도 연습실에서 4시간 동안 음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레슨 하듯 리허설을 함께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키신은 1년에 40회 이상은 연주회를 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주 레퍼토리도 1년 단위로 자신이 새롭게 도전할 곡을 정해 놓고 전 세계를 돌며 똑같은 곡을 연주한 뒤 음반 녹음을 한다.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기 위한 완벽주의 근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7일 기자간담회에서 “연주회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많다. 곡 해석의 특별한 방법은 없으며, 내가 원하는 스킬이 나올 때까지 연습하다 보면 음악 자체가 내게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첫 내한공연을 단 1회로 끝낸 키신은 12∼29일 일본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요코하마(橫濱) 등 6개 도시에서 독주회를 한다. 1년에 40회뿐인 그의 연주회 스케줄을 이처럼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선점하기 때문에 그를 한국무대에 초청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10년간 키신 내한공연을 이뤄내기 위해 공을 들여 온 기획사 마스트미디어와 크레디아가 출혈 경쟁을 하지 않고 힘을 모아 공연을 성사시켰다는 점에서도 이번 공연의 의미는 값지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