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명호]유엔地名회의장의 日‘독도 망언’

  • 입력 2006년 4월 11일 03시 02분


세계 63개국에서 220여 명의 대표가 참가해 지난달 28일부터 4일까지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제23차 유엔 지명(地名)전문가회의는 각국의 논전과 정보전을 방불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국 영토와 영해의 지명에 관한 사항을 유엔에 보고하고 국제적 공인을 받는 회의이기 때문이다.

열띤 논쟁은 첫날부터 벌어졌다. 한국 수석대표인 하찬호 외교부 국제표기대사가 “동해는 한국 역사와 국민 생활의 일부이다. 한일 간 이 문제에 대한 해결안을 도출해 낼 때까지 동해와 일본해가 병기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일본 대표인 스지 마사루 외무성 참사관은 “‘일본해’ 명칭이 국제수로기구(IHO)와 유엔의 지지를 받고 공식 문서에도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국 간 논전은 그 다음 날에도 계속됐다. 한국의 주성재(경희대) 교수가 한국 지명의 로마자 표기화를 보고하면서 독도를 ‘Dokdo’로 표기하고 있음을 사례로 들자, 일본의 모리야스 가쓰미 외무성 수석사무관이 기습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일본의 고유 영토이며 ‘Dokdo’가 아닌 ‘Takesima(다케시마)’로 표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대표인 이기석 동해연구회 회장이 즉시 “독도는 6세기 이래 한국의 영토”라며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논박했지만, 같은 회의에서 우리가 같은 발언을 했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던 2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일본의 영토 침해적 발언이 ‘자국 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2005년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한 일본대사의 망언, 얼마 전 일본 정부의 독도에 대한 교과서 지침 등에 이은 것으로 독도 문제를 ‘국제 분쟁화’하려는 전략이다. 일본대표단은 한국 측 보고와 주장이 나오는 즉시 빈 외교팀과 대응책을 협의했다.

유엔 지명전문가회의는 물론 지명의 국제 표준화를 위해 열린다. 하지만 이 회의는 영토나 영해에 대한 각국의 주장이 펼쳐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독도의 예에서 보듯 지명이 해당 지역의 관할권이나 연고권을 시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회의에선 동해뿐 아니라 ‘걸프 만’ 명칭을 둘러싸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라비아 만’과 이란의 ‘페르시아 만’ 명칭이 첨예한 논쟁을 벌였다. 키프로스 내의 몇몇 지명을 둘러싸고도 키프로스와 터키 간에 대립을 보였다.

이번 회의는 동해 문제와 관련해 “양국 또는 다국 간 협의를 통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회의는 내년 8월 다시 열리고 이때 결의안이 채택될 예정이다. 이는 일단 한국에 유리한 변화다.

2002년 9월 모나코의 IHO 회의에서도 IHO는 ‘일본해’ 명칭에 대한 한국 측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한일 양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명칭을 협의하도록 하고 회원국들에 관련 내용을 회람하도록 했다. 그런데 일본의 로비로 하룻밤 사이 회람이 철회돼 버렸고 ‘일본해’ 명칭이 계속 쓰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과 일본해 표기를 지키기 위해 전 외교력을 동원하고 있다. 말 그대로 ‘올 코트 프레싱’이다. 문제는 우리의 대비다. 올해도 동해연구회는 러시아에서 국제지명 세미나를 연다. 하지만 연구조사 활동, 국제회의 참석, 국제 세미나 개최 등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며 전문가 양성도 시급하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의 관심이 적다는 데 있다. 문제가 터지면 그때뿐이다. 일본의 총공세에 맞서 독도를 지키고 동해 지명을 되찾는 데는 국민의 관심과 지원이 꼭 필요하다.

문명호 동해연구회 이사 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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