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1년 맥아더 사령관 전격 해임

  • 입력 2006년 4월 11일 03시 02분


1951년 4월 11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맥아더는 대통령이자 군 최고사령관인 내 명령에 도전했다. 그의 반항 행위를 더는 용서할 수 없다”며 당시 6·25전쟁을 이끌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를 미 극동군 총사령관 겸 유엔군 총사령관 직에서 전격 해임했다.

그러나 해임된 맥아더는 본국에 ‘개선장군’처럼 귀환했다. 7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연도에서 그를 환영했고 의회는 공화당 주도로 해임의 적절성을 따지는 청문회를 열었다. 또 그에게 군 전역을 기념하는 이례적인 고별 연설 기회까지 부여했다.

이 자리에서 맥아더는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모든 유효한 수단을 동원해 신속히 그 전쟁을 끝내는 것 말고 달리 대안이 없다. 전쟁의 최고 목표는 우유부단하게 끄는 것이 아니라 승리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이제 나는 군인으로서 생애를 마치고 사라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명언으로 기억하는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란 말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국제사회에서는 공산주의가 팽창하고 미국 내에서는 매카시즘 선풍이 불던 당시, 맥아더는 일약 공산주의와 맞서 싸우다 희생된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날 그에 대한 역사적 군사적 정치적 평가는 사람에 따라, 또 처지에 따라 크게 갈린다.

금세기 최고의 전략전술가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서 터무니없는 전략적 오류를 범했다는 비판도 있다.

용기, 희생, 애국심, 정직으로 일생을 살아온 모범적인 군인이라고 극찬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오만과 허풍, 현란한 언사로 일관하며 문민 우위에 도전한 우파 정치군인일 뿐이라고 악평하는 쪽도 있다.

한국에서도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영웅으로 평가하는 게 대세이긴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일각에서 그것을 부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그가 미군 최고의 엘리트 군인이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 제1차 세계대전 때 최연소 사단장과 준장으로 승진, 13차례의 훈장 수상, 43세에 웨스트포인트 사상 최연소 교장, 최연소 육군 참모총장 등….

그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가 그만큼 뛰어난 인물이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아닐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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