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통합 방송법에 따라 설립된 방송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정치적 독립성 확보였다. 위원회의 법적 지위를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기구로 한 것도 방송이 권력의 홍보기관의 기능을 하곤 했던 구시대적 행태를 청산하자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평가에 참여한 교수들은 정치적 독립성 면에서 방송위가 오히려 더욱 취약해졌다고 분석했다. 노무현 정부가 방송을 정치적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방송위의 모든 정책이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표류했다는 것이다.
평가자들은 위원회의 정치적 독립성 결여와 함께 심각한 문제로 위원들의 전문성 취약을 꼽았다. 전문성이 없다 보니 위원회의 위상이 허약해 방송사를 포함한 각종 압력 집단들로부터 독립성을 지켜내지 못해 결국 정책 효율성까지 떨어뜨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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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감싸기 식 정책 결정=평가자들은 방송위가 지상파 방송사들의 독과점이나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오히려 낮방송 연장을 허용하고 중간광고를 포함한 광고 방식의 규제완화를 모색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권방(權放)유착’이라는 새로운 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정용준 전북대 교수는 지상파 봐주기 식 정책 결정의 사례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정책을 꼽았다. 지상파 사업자들에게 사업권을 주기 위해 ‘이동 중 시청할 권리’라는 억지 논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동하면서까지 TV를 봐야 할 필요가 있는가. 결국 사업성도 없는데 위성DMB, 복수의 지상파DMB 사업자들만 난립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케이블TV도 지상파 방송의 난시청을 해소해 주는 대신 지상파 방송에 독점적으로 편승함으로써 유료 방송시장의 황폐화, 불공정 경쟁의 만연 등 여러 문제를 낳고 있지만 방송위는 속수무책이었다”고 평가했다.
경인방송의 사업자 선정이 늦춰지고 있는 것도 새로운 경쟁자 등장을 꺼리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방송정책 전문가 없는 방송위=정윤식 강원대 교수는 “방송 행정을 하려면 법률, 경제, 기술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행정경험과 기술이 일천한 사람들이 방송위원을 맡는 바람에 모든 정책 결정을 외부 전문가의 연구와 세미나에 의존한다”고 비판했다.
윤석민 서울대 교수는 ‘방송’보다는 방송정책의 목표와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 등 ‘정책’에 대한 전문성 부족이 더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KBS의 방만 경영을 지적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대해 방송위가 공영방송의 특수성을 고려해 재평가한 뒤 처방을 내놓아야 했으나 이런 과정 없이 방송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려다 이해 당사자들 간의 갈등만 키우고 KBS 개혁도 좌초됐다는 것.
▽위원회의 병폐, 결정 안 하기=방송위는 합의제 행정기구의 가장 큰 병폐인 ‘비(非)의제화’의 전형적 모습도 보였다. 방송위원들이 자신들을 추천한 여야에 정치적 부담이 되거나 이해집단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사안들에 대해 아예 논의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가자들은 이 때문에 지상파 방송의 구조조정이나 방송 개혁 같은 문제가 방송위에서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선영 가톨릭대 교수는 “지역 방송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 결정, 뉴미디어에 관한 경쟁력 강화 방안, 시청자 권리를 함양하기 위한 방안 등 21세기 정보사회에 부응할 정책 결정이 거의 없었다”며 “이는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윤석민 교수는 전문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방송위의 경영 효율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2기 방송위원회 평가 참여 교수 (가나다순)▼
김대호(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김동욱(서울대 행정대학원)
도준호(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박선영(가톨릭대 법학부)
윤석민(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정용준(전북대 신문방송학과)
정윤식(강원대 신문방송학과)
조은기(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황 근(선문대 언론광고학부)
■ 3기 방송위 누가 거론되나…자천타천 후보 70~80명 물망
방송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한 상임 정무직 5명과 비상임 명예직 4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임명은 대통령이 하지만 위원 3명은 대통령 추천, 3명은 국회의장, 나머지 3명은 국회 교섭단체의 천거를 받아 국회의장이 추천한다. 결국 대통령 3명, 여야가 6명을 나눠 추천하는 셈이다.
5월 10일 임기가 시작되는 3기 방송위원 후보로는 현재 70∼80 명이 물망에 올라 있다. 이 중에는 ‘자천’이나 추천자 주변의 희망사항을 입소문으로 만드는 ‘무작정 대시’도 적지 않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위원들은 방송위원 정원의 3∼5배수를 추천해 놓은 상태다. 다음 주면 대충 인선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현 방송위원 중에는 1, 2명이 유임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효성 부위원장과 성유보 박준영 위원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차기 위원장으로 꼽히는 성 위원이 가장 유력한 ‘잔류’ 후보다.
열린우리당 추천 인사로는 권혁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 김민남 방송위 산하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안상운 변호사(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 이옥경 내일신문 전 편집국장(이미경 국회 문광위원장 언니), 정상윤 경남대 교수 등이 거명되고 있다.
한나라당 쪽 위원으로는 KBS 강동순 감사와 김인규 이사, 유재천 한림대 특임교수, 최창섭 서강대 교수, 방석호 홍익대 교수가 거론된다.
청와대 추천 케이스로는 언론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출판인과 시민단체 몫으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공동대표인 신태섭 동의대 교수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또 케이블 업계는 유재홍 케이블TV방송국(SO)협의회장과 유삼렬 전 케이블TV협회장 중 한 사람이 케이블 TV 출신 최초의 방송위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부에선 6월 말 임기가 끝나는 정연주 KBS 사장이 방송위원으로 옮기고 KBS 사장은 내부에서 승진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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