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감동은 더디고 느리게 오는데 요즘 사람들은 감동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김용택(58) 시인은 망설였다고 했다. 두 권 분량의 원고 중 시집으로 묶기로 한 짧은 시 50여 편을 추려내 다듬으면서도 그는 생각이 많았다.
“탁 치면 감동이 바로 튀어야 하는 게 요즘 세상인데 시는 그렇지 않은 게지. 다들 끊임없이 질주하잖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사회도 그렇지만 시인들도 문제가 있지. 현실과 너무 멀어져 있다고.” 11일 만난 김 씨의 얘기다.
그렇지만 시인은 시를 써야 사는 법이다. 김 시인이 새 시집 ‘그래서 당신’(문학동네)을 냈다. 2002년 ‘연애시집’ 이후 4년 만이다. 시집이 가뿐하다. 한 편 한 편 말수가 적은 대신 여백이 많다. 당연히 함께해야 할 작품해설도 없다. 산문시가 대부분인 요즘 시풍을 거스르는 시집이다. “(해설도) 군더더기인 것 같더라고. 시가 길어지면 지루해 보이고.”
과연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바람이 불면/내 가슴속에서는 풀피리 소리가 납니다’(‘그리움’)가 한 편, ‘밤길을 달리는데/자동차 불빛 속으로 벌레들이 날아와 유리창에 부딪쳐 죽는다//필사적이다’(‘사랑’)가 한 편이다. 짧지만 무엇을 노래하는지 명쾌하게 와 닿는다. 언어를 채우기보다는 비우고, 현란하게 쓰기보다는 버리고 쳐내는데 감정은 한결 또렷하다.
‘달’이라는 시는 이런 비움의 절정이다. ‘그래, 알았어/그래, 그럴게/나도…응/그래’가 시의 전부다. 어느 날 달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응, 응, 전화하고 내려놓았는데, 가만 돌아보니 짧은 말 몇 마디에 사랑이 듬뿍 묻었다. 살면서 사랑한다는 게 그런 것이다. 그 ‘사랑하는 사람’이 시집에서 실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은영아! 하고 산에 대고 부르고 싶지요/나는 혼자 바람 부는 산을 보며 진짜 그렇게 부를 때가 있답니다.’(‘내 여자’에서)
“은영이? 우리 각시”라면서 김 시인은 웃음을 터뜨린다.
김 시인은 연애시의 절창으로 꼽히는 ‘그 여자네 집’ 등을 통해 사랑과 연애의 감정을 그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섬진강 풍경에 버무려 왔다. 그는 “지금껏 연애에 대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시로 풀어썼지만 새 시집에서는 사랑의 열정과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함께 담았다”고 설명한다. 예순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에 묵혀 뒀던 삶에 대한 생각들을 시로 내보이고 싶다는 것이다. 가령 ‘때로는 오래된 산길을 홀로 가는 것 같은 날이 있답니다’나 ‘인생은 한번 피었다가 지는 꽃이야’라는 시구가 그렇다.
시인은 항상 시대로부터 망명해야 한다고 믿는 김용택 시인. 그가 보기에 오늘날 시인이 저항해야 할 대상은 탐욕과 오만이 치달리는 ‘치욕스러운 지구’다. 말을 아끼고 아껴 수수하고 소박해 보이는 그의 시편들은 숨 가쁜 세상에 대한 저항이다.
‘잎이 필 때 사랑했네/바람 불 때 사랑했네/물들 때 사랑했네/빈 가지, 언 손으로/사랑을 찾아/추운 허공을 헤맸네/내가 죽을 때까지/강가에 나무, 그래서 당신.’(‘그래서 당신’)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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