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통신]“헉,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고산병과의 싸움

  • 입력 2006년 4월 14일 03시 00분


니알람(해발 3700m)에서 고소 적응 훈련을 하고 있는 대원들. 해발 4100m의 마을 뒷산을 3시간 가까이 올랐다.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게 고소 적응의 지름길이다. 전창 기자
니알람(해발 3700m)에서 고소 적응 훈련을 하고 있는 대원들. 해발 4100m의 마을 뒷산을 3시간 가까이 올랐다.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게 고소 적응의 지름길이다. 전창 기자
《“헉, 헉… 머리속이 두개골하고 따로 놀고 있는 것 같아!”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에베레스트 횡단원정대의 최고령 대원 허영만(59) 화백의 푸념이다. 머리가 부서지는 듯 아픈 이는 허 화백뿐만이 아니다. 모든 대원이 느낀다. 높은 지대에 오르면 기압이 낮고 산소가 부족해 생기는 고산병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대원들의 아침 인사는 “그분(고소증세) 오셨어요?”다.

구자준 원정대장과 박영석 대장을 비롯한 12명의 본대원들은 5일 정부군과 공산반군의 대립으로 전운이 감돌던 네팔 카트만두를 떠나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버스로 5시간 동안 달려 도착한 네팔과 중국의 국경도시 코다리. 이곳에서 일명 ‘우정의 다리’를 넘어서니 대형 오성홍기가 펄럭이는 중국 티베트의 작은 마을 장무(해발 2350m).

이제부터 본격 카라반(caravane)이다. 보통 히말라야 고산 원정에서는 베이스캠프까지 1주일에서 보름 가까이 걸어서 간다. 이처럼 하루 12시간 가까이 걷는 트레킹을 하면 서서히 고도를 높여 자연스럽게 고소 적응력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원정대가 등반을 시작할 티베트의 에베레스트 북쪽 베이스캠프는 사정이 다르다. 비포장이지만 도로가 베이스캠프까지 깔려 있어 호화스럽게도 걷지 않고 지프와 트럭으로 이동한다. 네팔 쪽 히말라야 고산 베이스캠프에 가는 길과 달리 티베트 쪽에는 원정대가 쉴 수 있는 간이숙소(로지·lodge)도 거의 없어 트레킹은 어렵다.

차를 타고 간다고 쉽게 여기면 오산이다. 장무에서 베이스캠프까지 차로 340km.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기까지 6일 동안 차를 타는 시간은 11시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고소 적응을 위해 인근 4000∼5000m급 산을 오르내리는 일을 반복한다.

베이스캠프까지 굽이굽이 펼쳐진 절벽 길(정말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을 따라 쉬지 않고 달리면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십중팔구 의식불명이나 사망에 이르게 된다. 갑작스럽게 고지에 오르면 뇌나 폐에 체액이 빠져 나와 고이는 뇌부종이나 폐부종으로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정대는 6일 해발 3750m의 니알람에 도착했다. 보통 해발 2800m부터 고소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니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대원들은 도착하자마자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만이 고소적응력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

하루 뒤인 7일에는 대원 모두 해발 4100m의 동네 뒷산(?)을 등반했다. 헉헉거리며 다섯 발자국 걷고는 심호흡을 한다. 심장은 터질 것 같지만 누구 하나 군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할 기운조차 없다. 적응력을 키우지 못해 두통과 구토 증세가 계속되면 베이스캠프를 구경도 못하고 ‘귀향조치’ 당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8일엔 비포장도로를 3시간여 동안 달려 해발 4300m의 딩그리에 도착했다. 한꺼번에 고도 550m를 올린 것이다.

여기서도 도착하자마자 대원들은 거리를 배회했다. 고소 적응을 위해서다. 그러나 거리의 풍경은 야속했다. 어린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를 하고 있었고 어른들은 야크 똥을 태워 매캐한 다방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는 고소 적응을 위해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고산족들은 유유자적하니 이토록 인간이 다를 수 있을까?

9일엔 다시 해발 4700m의 동네 뒷산에 올랐다. 이번엔 낙오자가 2명이나 생겼다. 이들이 낮은 고도의 니알람이나 장무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계속 베이스캠프로 전진해야 할지 판단은 대장만이 내린다.

카라반을 시작하며 대원들의 하루는 회진으로 시작된다. 의료담당 이해민 대원이 혈압계와 동맥혈산소포화도측정기를 들고 각 방을 돈다. 동맥혈산소포화도 측정기란 혈액 내에 산소가 얼마나 녹아 있는지 백분율로 알려주는 기계다. 건강한 일반인은 1기압에서 95% 이상 나온다. 하지만 고소에서는 85% 이상이면 정상. 왼손 검지를 센서가 달린 집게로 집기만 하면 된다. 고도를 600m 정도 올리면 첫날에는 산소포화도가 보통 84∼85% 나온다. 이튿날 90% 이상이면 고소에 적응된 것이다.

딩그리에 도착한 2일째인 9일 아침 대원 2명의 산소포화도가 기준치 아래를 기록했다. 이들이 바로 이날 뒷산 ‘마실’의 낙오자들이었다. 과학적 수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도 머리가 부서지는 듯 아프다. 하지만 고소증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니알람부터 겁이 나서 20년 넘게 피워 온 담배를 끊었다. 머리 아픈 것이 담배를 끊어 생긴 금단현상인지 고소 증세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해발 8000m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호기’를 부리던 박영석 대장도 이번 원정을 앞두고 2월 15일부터 끊었다. 그래도 그의 9일 산소포화도는 89%로 평균 미달이다. 이날 소화불량 등 고소증세로 아침도 걸렀다. 그 같은 세계적 산악인도 고소증세로 고통을 받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 히말라야 ‘雪山의 감동’ 잠깐… 가축 분뇨 널려 있어

히말라야 고산족은 집집마다 메주를 널어 놓은 듯 야크 똥을 말린다. 전창 기자

파키스탄에서 동쪽 부탄까지 동서로 2500km나 뻗은 히말라야산맥.

네팔이나 티베트의 어떤 언덕에서도 볼 수 있는 이 병풍 같은 설산의 파노라마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이 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히말라야가 주는 감동은 여기까지다. 현지 주민들이 사는 곳에 가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소 양 말 야크 개 등 동물들의 분뇨가 널려 있어, 밟지 않기 위해 어릴 적 놀이하듯 한발 뛰기를 해야 할 정도다. 하루에 한번이라도 똥을 밟지 않으면 정말 행운이다.

화장실도 재래식에다가 문도 제대로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를 보면 히말라야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 깨지곤 한다. 히말라야의 꿈을 찾아 가족 여행을 계획하는 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에겐 동물의 배설물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원이다.

네팔의 고산족은 소와 물소를 키우고, 티베트쪽에선 소와 비슷한 고산에만 서식하는 야크를 키운다. 고산족들은 소와 야크의 똥을 마치 메주처럼 빚어 집의 벽이나 담장 아래에 차곡차곡 쌓아 말린다.

말린 야크 똥은 여름철에도 밤낮 기온차가 심한 고산 마을의 유일한 땔감이다. 집집마다 중앙에 커다란 무쇠 난로가 있고 말린 쇠똥과 야크 똥을 잘게 부수어 불을 피운다. 물론 음식 장만도 동물 똥을 태운 불로 한다.

해발 4000m가 넘으면 발목 높이 정도의 풀들만 자라기 때문에 땔감을 찾을 수 없다. 초식동물인 소와 야크가 종일 돌아다니며 풀을 뜯고 배설하는 것이 고산족에겐 고마운 땔감을 대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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