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가 첫 단편집 ‘강산무진’(문학동네)을 펴냈다. 기자였던 그는 2001년 장편 ‘칼의 노래’가 히트를 치면서 ‘소설가 김훈’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문예지 편집자가 꼬박 두 계절을 기다려 받은 첫 단편 ‘화장(火葬)’이 200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한 기간은 짧지만 성과는 화려했다. 이렇게 유명세를 치른 작품들을 포함한 단편 9편이 새 책에 실렸다.
14일 만난 김 씨는 부끄럽다고 했다. “묶어놓고 보니까 ‘나’에 대해서만 썼다. 황석영 조정래 씨 같은 선배들은 거대 서사를 그려 놓는데, 나는 개인에 대해서만 얘기하더라. ‘우리’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도 쓰지 못하고 ‘나’의 이야기에만 머물고 있다니.”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쓸쓸하면서도 아름답다. 스타일리스트 언론인으로 알려진 김 씨의 문체는 소설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화장’에서 ‘엉덩이 살이 모두 말라버린 골반뼈 위로 헐렁한 피부가 늘어져서 매트리스 위에서 접혔다’와 ‘추은주의 머리가 바닥에 닿을 때 머리타래가 흘러내렸고 맨발의 뒤꿈치가 도드라졌다’ 같은 묘사가 그렇다.
“1995년 장편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을 내고는 소설 안 쓰려고 했는데…. 어쩌겠나, 소설이 시정잡배가 쓰는 것인데.” 김 씨가 단편에 담는 것은 바로 그 시정잡배들이 살아 가는 ‘인생이라는 것의 의미’다.
그가 보기에 삶의 비극은 짝사랑이 보답 받지 못하는 것도, 배우자에게 배신당하는 것도 아니다. 비극은 인간이 “어떤 끔찍한 상황에서도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는 존재”(평론가 신수정)라는 것이다. 일상은 사랑의 열정이나 죽음의 공포 같은 감정의 강렬함보다 앞선다. 그래서 ‘강산무진’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해야 하는 일은 슬픔에 섬세하게 몰두하는 게 아니라 ‘명퇴 위로금 8400만 원과 퇴직금 5000만 원’을 챙기는 것, 더는 돌볼 수 없는 어머니의 산소를 없애는 것’ 같은 일이다.
김 씨는 “작업실에다 ‘학난우노경(學難憂老境)’이라는 구절을 적어 놨다”고 했다. 배움이 어려우니 늙음을 걱정한다는 얘기는 김 씨에게 매질처럼 다가온다. 매일 오전 7시에 일어나 해를 맞고, 밥을 먹고 청소하고 자전거를 탄다. 그러다가 생각나면 소설을 쓴다. “요즘 단편 쓸 소재가 없어서 걱정”이라고 한다. 그는 계속 부끄럽다면서 언제까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책을 낼 때마다 그는 같은 모습이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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