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0일 서울 LG아트센터 공연
―‘7시간 반 연극’은 관객 입장에서도 도전이다.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않나?
“요즘 연극들은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모두들 TV의 영향으로 단절적 사고를 한다. 우리는 점점 더 속도전에 휩쓸려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과 예술은 속도의 공격에 맞서야 한다.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변화의 시기에 예술가는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연극인들조차 빨리 생각하는 것 같다. 빨리 생각하는 것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대가 빨라질수록 연극은 점점 더 느리고 진지해져야 한다.”
공연작인 ‘형제자매들’은 1985년 초연 후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그의 대표작.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빈곤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민중의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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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어느 연극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로부터 개인을 지키고, 타인을 모욕하는 사람들로부터 인간을 지켜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만큼 스스로를 괴롭히고 모욕하는 인간도 없으니까. 연극이 하는 가장 값진 역할은 관객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 안에서 진정한 인간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인간 본성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인간의 영혼은 연극의 가장 중요한 탐구 주제다. 인터뷰에서 말하기엔 너무 광범위한 주제이고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7시간, 10시간짜리 긴 연극을 만든다. 나는 인간의 본성은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죽기 때문이다. 영혼은 태어나면서부터 투쟁해야 하며 이는 인간의 숙명이다.”
―한국은 뮤지컬에 밀려 연극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러시아는 어떤가? 연극의 앞날을 낙관하나?
“한국이나 러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연극하기는 힘들다. 매스미디어, 대중문화의 공격을 받고 있고 연극인들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럴수록 자신감을 갖고 저항해야 한다. 연극은 사람들의 영혼에 필요하다는 믿음을 간직해야 한다. 연극에서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연극이란 인간에게 본원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 매스미디어의 속도공격에 맞서야
―최근 오페라 연출도 활발히 하는데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오페라도 공연 예술의 한 갈래이고 위대한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데 매력이 있다. 하지만 오페라 작업은 연극과 모순되는 부분도 많아 최소한으로 맡으려 한다. 가을까지 오페라 ‘살로메’를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끝내야 하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카체리나 이즈마일로바’를 완성해야 한다.”
이번 공연은 러시아 배우들이 직접 출연하며 한글 자막으로 대사를 보여준다. 공연은 5월 20, 21일. 5만∼9만 원. 02-2005-011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 국내 최장 연극작품은
7시간 반짜리 연극 ‘형제자매들’은 공연 시간이 길다보니 공연 시작 시간을 몇 시로 할지도 고민거리.
LG아트센터 측은 관객의 귀가시간을 감안해 공연을 낮에 시작할 수 있도록 내한 공연 날짜를 일부러 주말로 잡았다. 공연은 오후 2시 반에 시작해 밤 10시에 끝나며 각 3시간인 1, 2부(각 휴식시간 20분 포함) 사이에 1시간 30분의 저녁식사 시간이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공연된 작품 중 가장 길었던 연극은 1990년 극단 뮈토스(연출 오경숙)가 창단 기념작으로 무대에 올린 그리스 비극 ‘사람들’로 7시간이었다.
2004년 국립극단의 5시간짜리 연극 ‘뇌우’(연출 이윤택)도 긴 연극으로 꼽힌다. 4막으로 이루어진 ‘뇌우’는 2막 후 35분간의 저녁식사 시간만 한 차례 주어졌다.
국립극단은 저녁시간이 짧은 것을 고려해 미리 잔치국수를 준비했다가 관객에게 제공했다. 같은 해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됐던 ‘갈매기’도 3시간 40분으로 비교적 긴 연극으로 꼽힌다.
연극평론가 김윤철 씨는 “러시아나 유럽에서는 아직도 3시간 안팎의 연극이 흔하고 2시간은 짧은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연극은 짧아지는 추세다. 공연 예매사이트 티켓링크에 따르면 2002년 연극 평균 공연시간은 1시간 35분, 2003년과 2004년은 1시간 34분, 지난해에는 1시간 29분으로 3년 사이에 6분이 줄었다.
공연기획사 이다의 오현실 대표는 “기획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연 시간은 1시간 30분”이라며 “그 시간을 넘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져 관객들이 지루해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7시간 반짜리 연극 ‘형제자매들’은 과연 누가 와서 볼까? LG아트센터 측은 “예매자는 모두 개인”이라며 “연극 마니아나 연극계 종사자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 연극은 14일 현재 총 2000장 중 800장이 예매됐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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