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사업자,케이블TV ‘수신료 전쟁’

  • 입력 2006년 4월 19일 03시 01분


《지상파 방송이 잘 나오지 않아 케이블TV를 시청해 온 경기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신태호(43) 씨. 신 씨는 최근 케이블TV 수신을 포기했다. 70개 채널을 보는 대가로 매월 2000원(부가세 포함)씩 내던 수신료가 올해부터 1만6500원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신 씨는 “경제 사정도 나쁜데 공문 한 장 보내더니 갑자기 요금을 8배 넘게 올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스포츠 채널을 보기 위해 케이블TV에 가입했던 서울 양천구민 이길재(41) 씨도 최근 방송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 씨는 월 1만 원의 수신료를 내고 인기 스포츠 채널을 시청해 왔으나 이들 채널이 최근 1만5000원짜리 고급형 상품으로 옮겨가 이 씨 입장에서는 사실상 요금이 인상됐기 때문이다. 이 씨는 “요즘 박지성 이승엽 등 해외에서 스포츠 스타들이 잘 나가니까 (이들이 나오는 채널을 고가의 상품에 편성하는) 얄팍한 수법을 동원해 요금을 인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케이블TV 방송사들이 요금이나 채널 변경을 통해 줄줄이 수신료를 인상하자 시청자들이 케이블TV 시청을 거부하거나 인터넷에 케이블TV 안티 카페를 개설해 인상 반대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현재 케이블TV 가입 가구는 전체 가구의 66.2%인 1169만4162가구.

그러나 케이블TV 방송사들은 디지털 방송 준비와 프로그램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맞서고 있어 수신료 분쟁은 심화될 전망이다.

▽케이블TV 요금, 왜 오르나=케이블TV 요금 인상은 티브로드(옛 태광), CJ케이블넷 등 자본력이 있어 복수의 케이블 방송사를 소유한 사업자(MSO)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수신료 자체를 방송위원회가 규정한 상한선까지 올리거나 인기 채널을 고급형 상품에 편성하는 방식으로 인상 효과를 얻고 있다.

티브로드 계열의 일부 방송사들은 인기 스포츠 채널인 SBS스포츠와 MBC-ESPN을 6000원인 ‘보급형’ 상품에서 1만5000원인 ‘고급형’으로, 골프 채널을 8000원짜리 ‘경제형’에서 고급형 상품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케이블TV 사업자들은 수신료 ‘인상’이 아니라 ‘정상화’라고 주장한다.

1995년 케이블TV 출범 당시 27개 채널의 수신료는 1만5000원이었다. 그러나 사업자들 간 가입자 수 늘리기 경쟁이 벌어지면서 현재는 50여 개 채널의 평균 수신료가 5400원으로 가격 파괴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

강명신 CJ케이블넷 마케팅기획팀 부장은 “앞으로 디지털 방송을 시행하려면 월 수신료가 2만6000원은 돼야 한다”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양용석 티브로드 홍보담당 과장은 “케이블TV 도입 초기에는 수입의 30%를 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 배분했으나 현재는 10% 선밖에 지불하지 못해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지고 재방송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며 콘텐츠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가격이 인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흑자 경영에 웬 수신료 인상인가=그러나 케이블TV 방송사가 흑자 경영을 하고 있어 수신료 인상의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방송위원회가 발간한 ‘방송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케이블TV 방송사의 2004년 당기순이익은 692억 원이며 이는 전년도(278억 원)보다 148.9% 증가한 수치.

특히 케이블TV 시장의 72%를 차지하는 MSO들이 가입자가 많을수록 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리면서도 단독 사업자(SO)들보다 요금이 비싸고 채널의 수도 적은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즉, 규모의 경제 효과가 시청자들에 대한 서비스의 향상보다는 사업자의 사적인 이익으로 변질됐다는 해석이다(전혜선 방송위 선임조사관의 논문 ‘독립SO와 MSO의 시장행위 및 성과 분석’).

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지상파 방송의 난시청 문제를 케이블TV로 해소하는 데다 지역별로 사업자들의 독점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케이블TV 수신료는 준 공공요금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가격 인상의 불가피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하며 요금을 인상하더라도 점진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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