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공마리아/스님 신발을 신은 수녀님

  • 입력 2006년 4월 21일 03시 10분


올해 2월 여성 수도자들의 모임인 삼소회 소속으로 18일 동안 세계의 종교 성지를 순례하는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여정을 시작하면서 한바탕 웃음을 나눌 수 있었던 내 신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원래 작은 것이 많다. 키도, 손과 발도, 눈도 작고…게다가 마음까지 작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커질 수 없는 작은 것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고, 노력하기에 따라 커질 수 있는 마음은 하루하루 커지기를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눈에 띄게 작은(215mm) 내 발! 그래서 어릴 적부터 신발을 살 때마다 가게 주인들에게서 “남들 클 때 뭐했어요?” 하는 말을 습관처럼 듣고 살아왔다. 이런 내게 바람이 있다면 나도 남들처럼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한번 신어 보는 것이었다. 아무리 작은 신을 골라도 커서 바닥에 뭔가를 깔고 신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어느 날 아무것도 깔지 않고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생겼다. 친구 수녀님이 조계사의 불교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사 주신 스님 신발! 내가 소속된 전교 가르멜 수녀회 수도복과 같은 밤색이면서도 편하게 보이는 신발을 만난 것이다. 늘 신발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아는 친구 수녀님이 선뜻 나에게 선물했고, 하루 종일 걷고 싶을 정도로 편하기에 늘 그 신발을 신고 다녔다.

성지 순례를 떠나면서 많이 걷게 된다고 하기에 나는 당연히 그 신발을 신었다. 나에겐 더없이 편한 신발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수녀가 스님의 신발을 신은 격이 되었다. 많은 분이 “어? 수녀님이 스님 신발을 신었네!”라고 말했다. 세상에 스님 신발과 수녀 신발이 따로 있나?

아무튼 종교의 화합과 일치를 위해 떠난 길 초반에 스님 것과 수녀 것을 가르면서 한바탕 웃음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 첫걸음이 모여 나중에 돌아올 때는 서로를 가르는 마음이 사라지고, 한마음이 된 것을 알았다. 그야말로 수녀가 스님 신발을 신고, 인도 영국 이스라엘 이탈리아에서 우리 신앙의 뿌리를 찾는 동안 네 것과 내 것이 없어진 것이다. 우리가 ‘가르기’를 그만둘 때 일치와 화합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공마리아 전주 서신동성당 수녀·전교 가르멜 수녀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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