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대문학의 종언을 정말 실감한 것은 한국에서 문학이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미국 컬럼비아대 객원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근대문학의 종언’은 한국 문단에도 큰 파문을 낳았다. 30년 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발표했던 그가 이번엔 근대문학의 죽음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근대문학의 종언’을 포함한 저자의 마지막 문학평론 성격의 글 3편과 최근 사상에 대한 대담과 좌담으로 구성돼 있다.
그가 말하는 근대문학은 곧 리얼리즘 소설이다. 그것은 바흐친이 말한 카니발의 에너지가 넘치는 운문의 서사 장르가 아니라 루카치가 삶의 총체성을 담아낸다고 예찬한 묵독(默讀)의 서사장르다. 쉽게 말해 시대의 모순을 짊어진 고독한 시지포스의 작업으로서 문학이다.
리얼리즘 소설은 ‘공감’의 발견을 통해 국민을 하나로 묶어 주는 근대민족국가 시대의 예술적 성취였다. 그러나 세계화시대 민족국가의 호명은 약해졌고, 정치·사회문제에 대해 문학적 우회로가 불필요한 시대가 됐다.
‘이야기’로서 문학은 계속되겠지만 지성의 상징으로서 문학의 역사적 사명은 끝났다는 주장은 식어버린 사랑에 대한 이별통고처럼 씁쓸하다. 그러나 현실을 깨끗이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리얼리즘 문학에 대한 마지막 경의가 아닐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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