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 마이크 시험 중, 마이크 시험 중….
자, 자 여러분, 혹시 21세기 진보주의자의 행태에 왠지 이건 아닌데 하는 분들이 계시면 이쪽으로 오십시오. 세계화의 첨병인 나이키 매장의 유리창을 발길질하는 발에 나이키 신발이 신겨 있는 게 영 마뜩지 않은 분들, 자본주의의 심장을 겨냥했던 체 게바라의 사진이 자본주의 상품들에 찍힌 채 팔리는 것이 어리둥절한 분들은 다 이리로 오세요.
또 자신의 호화주택에서 엽총 자살한 커트 코베인이 자본주의 체제에 타살당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갸우뚱한 분들, 갱스터 힙합스타들이 서로 총격전을 벌이는 것을 체제 저항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이야기가 매스꺼운 분들도 오세요.
불특정 다수에 대해 폭탄테러를 가한 유너보머의 주장과 환경론자들의 주장이 너무도 닮은 게 의아한 분들도 빠짐없이 오세요.
이 두 젊은 캐나다의 X세대 철학자들이 떠드는 이야기 좀 들어 보세요. 1960년대 히피문화나 1970년대 펑키문화, 1990년대 힙합과 얼터너티브 록은 모두 환상이란 겁니다. 히피가 여피가 된 것은 배신이 아니라 당연한 진화라고 말합니다. 반체제를 선언한 펑키와 힙합, 얼터너티브가 주류문화로 변신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교묘한 포섭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예정된 것이었다고요. 코베인의 자살은 천박한 대중문화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자기폐쇄의 회로에 갇힌 젊은이의 퇴행적 자살이라고요.
이들은 다들 성의 자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소비문화에 대한 저항을 주장한 현대적 반문화(counter-culture)의 자식들이란 거지요. 계급혁명의 환상이 사라진 지금 이른바 진보적 운동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반문화입니다. 왜 갑자기 어려운 문자를 쓰느냐고요?
아, 그거 어렵지 않아요.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면 됩니다. 나도 모르게 나를 지배하면서 거짓 환상을 불어넣는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을 우상시하는 게 반문화란 이야기요. 요놈이 참 재밌는 혈통을 지녔는데 미국에서 엉뚱하게 ‘출세’한 유럽 혈통이란 거요. 국가를 부르주아계급의 착취도구로 묘사한 마르크스와 억압은 반드시 분출돼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결합으로 탄생했거든요. 또 히틀러가 자행한 끔찍한 폭력에 교묘하게 대중이 동원된 것을 목격한 게 일종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돼서 국가나 제도에 대한 극도의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젊은이들 왈, 이게 모두 히피들이 즐긴 LSD 같은 현실도피와 자기만족의 마약일 뿐이라는 거요. ‘내게 좋은 것’은 ‘세상에도 좋다’면서 자기들은 무책임한 일탈과 방종을 즐기면서 오히려 그들이 시스템이라고 주장하는 것만 공고히 해 주고 있다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제도에 뛰어들어 제도를 바꿔야 하는데 반문화는 제도 밖에서 외도를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거지요. 자유만큼 질서도 중하단 말이오.
그렇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이 책의 저자들, 진짜 좌파니까. 신자유주의자들이 국가의 개입에 경기를 일으키는 것도 결국 반문화, 반정치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면서 ‘불평등의 해소’를 가장 강조하니까. 원제 ‘The Rebel Sell’(2004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