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뉴욕 지성계는 그녀를 만들어 냈어야 했을지 모른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 수전 손택. 그녀는 1960년대 등단 이후 소설가,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로 끊임없이 변신하며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로 군림해 왔다.
이 ‘예술에 온 정신이 팔린 심미가’이자 ‘열렬한 실천가’는 1993년 7월,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폭탄이 쏟아지는 사라예보로 날아갔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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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사라예보를 위해, 사라예보에 대해 쓰인 듯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서방세계에서 잊혀진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자신들도 유럽 문화의 일원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현지 언론은 이를 두고 바깥세상이 사라예보와 연대감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리고 화나게도 내가 대표하는 사람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책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우리 시대의 확실한 존재감의 일부였던 한 작가가 20세기의 미학적이고 도덕적인 주요한 쟁점에 몸담았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한 에세이집이다. 보르헤스, 롤랑 바르트, 엘리자베스 하드윅 등 그녀의 ‘원천’이 되었던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자유로운 사유 속에 영화와 회화, 춤, 오페라, 연극, 사진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을 담았다.
그녀는 특히 작가의 소명에 대해, 지식인의 역사적 역할에 대해 격렬할 만큼 솔직한 육성을 들려 준다. 때로는 거만할 정도로 거침없이, 때로는 인간적이고 순수한 시선으로 소외되고 절망적인 것들에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얼음호수에 뛰어드는 것처럼 두렵고 무서운 일”이라는 그녀는 작가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작가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그녀는 전쟁 중인 사라예보에 아홉 차례나 다녀왔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물었다. “왜 다른 유명작가들은 그곳에 가지 않는가?”
그 누구도 보스니아의 잔학 행위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때는 모였었던 지식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 보스니아 전쟁에 대해 침묵했다.
“오늘날 탈(脫)정치화된 지식인들은 너무 까다롭고 냉소적이어서 대의에 봉사하는 일을 귀찮아한다. 스스로 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지식인들조차 자신의 나라에서 극히 제한된 보폭으로 움직인다.”
남은 것은 사적인 삶뿐이다. 개인주의와 자아 계발, 개인적 행복의 추구는 지식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가치가 되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은 지독할 정도다. 사라예보에서 갓 돌아왔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사람들이 줄곧 담배를 피워대는 곳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죠?”
이제 지식인들에게 ‘그곳’과 ‘이곳’의 거리는 너무 멀다.
“사회는 무엇보다 그 스스로에 대해 형성하고 있는 관념이라고 한다면 부유하고 평화로운 유럽과 미국 사회가 스스로 형성하고 있는 관념은 바로 혼돈, 무책임성, 이기주의, 비겁함, 그리고 행복의 추구이다. 그들의 행복이 아닌 우리의 행복, 그곳이 아닌 이곳에서!”
원제 ‘Where the Stress Falls’(2001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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