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는 싫어 가로가 좋아…‘3차 가로혁명’

  • 입력 2006년 4월 22일 03시 03분


놀이부터 아파트 내부설계까지 ‘가로’가 라이프스타일의 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과거의 ‘인간쌓기’ 놀이가 가로로 첩첩이 포개지기로 바뀐 가로놀이, 교실의 책상을 가로로 눕힌 또다른 가로놀이, 모니터를 가로로 돌려 보게 디자인 된 휴대전화, 좁은 공간에서 가로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은 욕망을 코믹하게 표현한 한 휴대전화 광고의 일명 ‘맷돌춤’. 인터넷 캡처사진,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사진 제공 팬택 앤 큐리텔
놀이부터 아파트 내부설계까지 ‘가로’가 라이프스타일의 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과거의 ‘인간쌓기’ 놀이가 가로로 첩첩이 포개지기로 바뀐 가로놀이, 교실의 책상을 가로로 눕힌 또다른 가로놀이, 모니터를 가로로 돌려 보게 디자인 된 휴대전화, 좁은 공간에서 가로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은 욕망을 코믹하게 표현한 한 휴대전화 광고의 일명 ‘맷돌춤’. 인터넷 캡처사진,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사진 제공 팬택 앤 큐리텔
《최근 청약이 끝난 경기 성남시 판교 아파트. 청약 열기 못지않게 눈길을 끈 것은 내부설계였다. 판교 아파트들은 대부분 방 3개와 부엌이 모두 거실과 나란히 배치되는 이른바 ‘5베이 설계’를 택해 가로로 길쭉하게 지어졌기 때문. 1990년대 지어진 아파트는 안방, 거실 등 2개 공간에만 발코니를 배치한 정사각형 스타일이 주류였다. GS건설 주택설계팀 이형건 과장은 “가로형 설계는 같은 공간에 가구 수가 상대적으로 덜 들어가기 때문에 비경제적이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환기, 채광, 조망 모두를 만족시키는 참살이(웰빙)형 주거환경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 제3차 가로혁명

‘가로’가 라이프스타일의 새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와이드스크린 TV, 가로로 모니터를 돌려보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폰 등 디지털 영상기기에서 두드러졌던 ‘가로’가 생활 속 디자인과 성형, 놀이문화 심지어 회사 내 조직관계에까지 침투하고 있는 것.

최근의 이런 변화는 1990년대 중반 일간지들의 전면 가로쓰기가 완료되면서 문자 읽기의 습관이 세로에서 가로로 바뀐 ‘제1차 가로혁명’,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와이드 디지털TV 출현 이후 방송, 통신 영역에서 진행된 ‘제2차 가로혁명’에 이은 ‘제3차 가로혁명’으로 일컬어진다.

우선 두드러진 것은 연예인들의 성형 스타일 변화. 최근 와이드 디지털TV를 염두에 둔 고화질(HD) 촬영이 늘어나면서 연예인들은 눈과 코의 성형 흔적을 보이지 않게 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HD 촬영에서는 인물의 이마 윗부분을 잘라버리고 눈과 코 중심으로 얼굴을 클로즈업하기 때문.

이에 따라 연예인들 사이에선 몽고주름(눈 안쪽 위꺼풀이 아래꺼풀을 덮으면서 생기는 주름)을 없애 눈을 크게 보이게 하는 수술인 기존의 ‘앞트임 수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미세 시술법이 인기다. 카메라가 클로즈업을 하더라도 수술 흉터가 거의 보이지 않는 이른바 ‘매직 앞트임 수술’이 유행인 것.

‘가로’를 키워드로 삼는 새로운 놀이문화도 창조됐다. 여러 사람이 일제히 가로로 눕거나 기둥 사이에 가로로 매달린 엽기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가로 본능 놀이’가 대표적이다.

○ 인터넷 평등문화의 오프라인 반영

‘가로’는 생체공학에 비추어 보아도 인간 친화적이다. 인간의 눈 구조는 상하가 아닌 좌우 방향으로 보는 것에 훨씬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

한성대 미디어디자인콘텐츠학과 지상현 교수는 “막대한 양의 정보가 쏟아지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를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 가로형 시선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빠르고 편안한 시선 방식은 결국 사람을 더 감성적이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일상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제3차 가로혁명’은 조직체계와 인간관계의 모습까지 변화시킨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수직적 관계에서 협의와 소통을 중시하는 수평적 관계로 조직이 바뀌어 가는 것.

바른손카드를 제작하는 ㈜유사미가 지난해 도입한 ‘번개 승진제’가 대표적인 예다. ‘번개 승진제’란 팀원들이 프로젝트별로 팀장을 맡아 업무를 주도하는 것으로 해당 프로젝트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이라면 말단사원이라도 같은 팀에 속한 부장이나 이사급까지 ‘휘하’에 두고 업무를 진행한다.

야후코리아가 운영 중인 ‘띠 동호회’도 가로개념 조직시스템. 1969년생 닭띠 차장과 81년생 닭띠 인턴사원이 직급과 부서를 막론하고 모여 신사업 아이템 등을 논의한다.

SK네트웍스 박지영 서비스혁신 그룹장은 “나이나 촌수에 따라 상하 관계가 명확해지는 실제 인간사회와 달리 인터넷의 사회망은 기본적으로 평등문화”라며 “이런 평등문화의 영향으로 오프라인에서도 ‘가로 커뮤니케이션’의 확산이 이뤄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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