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책여행]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5)

  • 입력 2006년 4월 2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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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놀라움에, 그것도 엄청난 놀라움에 대비하고 있어야 하네….”(닐스 보어)

현대물리학의 가장 영향력 있고 독창적인 해석가로 꼽히는 ‘시인을 위한 물리학자’ 존 휠러. 20대 때 자신의 스승이었던 보어의 말을 항상 기억한 그는 1960년대에 블랙홀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물리학 역사상 가장 기이한 ‘다(多)우주론’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리고 ‘아원자 물질은 실체가 없다’는 스승의 주장에서 나아가 이 세계의 실재가 전혀 물리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의 과학저술가 존 호건은 ‘과학의 종말’(김동광 옮김·까치)에서 휠러의 세계관을 이렇게 압축한다. “우리 우주는 관측이라는 행위, 즉 우리의 의식이 필요한 ‘참여적 현상’이다.”

1990년대 초반 휠러는 ‘지연된 선택의 실험’이라는 사고(思考)실험을 고안했다. 그것은 ‘두 개의 틈 실험’의 변형이다.

‘두 개의 틈 실험’은 양자현상의 정신분열적(?) 본성을 잘 드러낸다. 두 개의 틈이 있는 벽을 향해 전자를 방사하면 전자들은 마치 파동처럼 움직인다. 전자는 두 개의 틈을 동시에 통과하면서 파동이 겹쳐져 간섭(干涉)무늬를 형성한다. 그러나 실험자가 한쪽 틈을 막으면 전자들은 열려진 다른 쪽 틈을 마치 입자처럼 통과하고 간섭무늬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휠러는 ‘선택을 나중에 하는 실험’에서 전자들이 이미 벽을 통과한 ‘이후에’ 두 개의 틈을 열어놓을 것인지, 아니면 한쪽 틈만을 열어놓을 것인지를 결정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결정(틈을 다 열어놓을지 말지)을 미리 하고 전자를 방사했을 때와 동일하게 나타났다! 전자들은 마치 실험자가 자신들을 어떻게 관찰하기로 선택했는지를 미리 아는 것처럼 보인다.

휠러는 이 과정을 ‘지연된’ 스무고개 게임에 비유했다.

이 게임은 문제를 낸 사람(질문을 받는 사람)이 미리 답을 정하지 않고 질문을 받은 ‘후에야’ 그 어떤 것을 마음속에 떠올리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서야 문제를 낸 사람은 ‘디즈니랜드’를 생각하고, ‘아니요’ 라고 답하는 것이다.

참가자가 질문을 던지기 전에는(실험자가 어떤 방식으로 관찰할지를 정하기 전에는) 그 어떤 답도 존재하지 않는다(전자는 아직 파동도 입자도 아니다. 실체가 아닌 것이다).

휠러는 과학자들이 ‘궁극의 답’을 좇지만 그것은 결국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라고 자른다. “진리는 객관적으로 이해되는 무엇이라기보다는 단지 상상의 산물이다. 우리는 진리를 창조할 뿐만 아니라 실재 자체, 바로 그 ‘만물’을 우리가 제기하는 질문을 통해 창조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양자역학과 동양사상 사이에 유추를 끌어내고자 시도했던 휠러. 그의 말이 법구경의 첫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름 아닌 우리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주가 태어났을 때 정신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휠러는 마치 선승(禪僧)과도 같이,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으스스한 역설을 던진다.

“만물의 본질에 들어 있는 것은 답이 아니라 물음이다. 우리가 물질의 가장 깊은 곳, 우주의 가장 먼 변방에 다다라서 그곳을 들여다보았을 때, 궁극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우리를 마주 보는 당황스러운 자기 얼굴이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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