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김주원(28) 씨가 25일 오후 7시(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4회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러시아 마린스키(키로프) 발레단의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 씨와 공동으로 최고 여성무용수 상을 수상한 것.
현존 세계 최정상의 발레리나로 꼽히는 영국 로열발레단의 실비 귀엠, 알리나 코조카루 씨 등이 역대 수상자인 ‘브누아 드 라 당스’는 흔히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린다.
“수상까지 하리라곤 꿈도 못 꾸었어요. ‘월드 스타’ 발레리나들이 모두 거쳐 간 이 상에 후보로 뽑힌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죠. 그저 시상식 날 최종 후보가 펼치는 기념 공연에서 최선을 다해 ‘한국 발레가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현재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김 씨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오전 1시 반쯤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놀라고 흥분돼서 잠이 오지 않더라”는 말로 기쁜 마음을 전했다. 김 씨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은 2005년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해적’의 여주인공 ‘메도라’ 역. 올해는 김 씨를 비롯해 파리 오페라 발레, 마린스키 발레 등 세계 정상의 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남녀 무용수 각 5명이 최종 수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후보가 됐다는 말을 듣고도 개인적인 기쁨보다 이제 한국 발레가 이만큼 평가를 받는다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너무 뿌듯했다”며 “동양적인 서정성으로 여주인공 ‘메도라’를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껏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수상한 한국 무용수는 199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카멜리아 레이디’로 최고 무용수 상을 받은 강수진(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 씨가 유일하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무용수가 국내 발레단 작품으로 이 상을 수상하기는 김 씨가 처음이어서 한국 발레의 쾌거로 꼽히는 것.
김 씨는 “1998년 국립발레단에서 공연했던 ‘해적’이 내 데뷔작이었다”며 “당시 부상 때문에 한 차례밖에 무대에 서지 못했다가 지난해 7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전막을 공연했는데 그 작품으로 수상하게 됐다”며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역시 ‘해적’으로 김 씨와 함께 최고 남성무용수 부문 후보에 올랐던 국립발레단의 김현웅 씨와 안무 부문 후보였던 현대무용가 안성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씨는 수상하지 못했다.
김주원 씨는 이날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김현웅 씨와 함께 ‘해적’ 중 ‘아다지오’를 공연했다. 그는 27일 귀국한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브누아 드 라 당스::
1992년 국제무용협회 러시아 본부가 제정한 상으로 매년 4월 장소를 바꿔 가며 시상식을 연다. 아마추어나 신인 대상의 콩쿠르와 달리 전 세계 직업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톱클래스 무용수와 안무가가 심사 대상. 한 해 동안 세계 각국에서 공연된 작품의 비디오를 심사해 안무, 무용, 음악 등 부문별 후보를 뽑고 시상식 날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 이 상의 하이라이트인 최고 남녀 무용수로 뽑히려면 심사위원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올해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발레단장을 지낸 최태지 정동극장장이 8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위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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