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동도 리메이크가 될까요?…‘맨발의 기봉이’

  • 입력 2006년 4월 27일 03시 03분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는 등장인물의 속 깊은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게 전해오는 영화 ‘맨발의 기봉이’. 사진 제공 영화사 숲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는 등장인물의 속 깊은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게 전해오는 영화 ‘맨발의 기봉이’. 사진 제공 영화사 숲
신현준 김수미 주연이라는 이야기만 듣고, 또 두 사람이 나왔던 ‘가문의 위기’에 익숙한 관객들은 코미디를 상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 ‘맨발의 기봉이’는 잔잔한 휴먼 드라마다. 몸은 훌쩍 커 버렸으나 어릴 적 앓았던 열병의 후유증으로 지능은 8세에서 멈춰 버린 아이 같은 어른 엄기봉, 그의 어머니를 향한 지극한 효심을 영화에 담았다.

영화는 물 흐르는 듯한 전개로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이 각박한 시대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는 등장인물의 속 깊은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게 전해온다.

문제는 영화가 주는 기시감. 이미 공중파 다큐멘터리(2003년 KBS 2TV 인간극장 ‘맨발의 기봉 씨’)를 통해 방영된 원작을 리메이크한 것은 이 영화가 짊어진 태생적 한계다. 아무리 감동적인 내용이라 하더라도 영화가 실제 사람들이 나오는 다큐를 넘어서는 감동을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엄기봉을 모른다 해도 영화가 첫 부분에 아예 다큐에 나왔던 모자(母子)를 여러 컷 소개하는 친절을 베푸는 바람에 판타지적 매력을 없애 버린다. 이야기의 축이 장애인의 마라톤이란 점도 지난 영화 ‘말아톤’이 주는 익숙함을 연상시킨다.

TV를 보고 감동해 먼저 영화화를 제안했다는 배우 신현준은 “영화를 찍으며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고 했다. 배우는 치유를 받았을지 몰라도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던 관객들에게까지 치유의 에너지가 옮겨오지는 못한다.

기존의 연기 틀을 뒤엎는 신현준의 장애 연기는 진지하고 자연스러워 기대 이상이다. 하지만 이미 배우 경력 16년째인 ‘정상(正常)인 신현준’의 이미지는 그의 이력만큼이나 관객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어 몰입하기 어려웠다. 신현준은 ‘말아톤’의 조승우나 ‘오아시스’의 문소리가 장애 연기를 할 때와는 달리 그의 연기력과 무관하게 이미 너무 유명해져 버린 배우였다. 상영 중. 전체 관람가.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