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물 흐르는 듯한 전개로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이 각박한 시대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는 등장인물의 속 깊은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게 전해온다.
문제는 영화가 주는 기시감. 이미 공중파 다큐멘터리(2003년 KBS 2TV 인간극장 ‘맨발의 기봉 씨’)를 통해 방영된 원작을 리메이크한 것은 이 영화가 짊어진 태생적 한계다. 아무리 감동적인 내용이라 하더라도 영화가 실제 사람들이 나오는 다큐를 넘어서는 감동을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엄기봉을 모른다 해도 영화가 첫 부분에 아예 다큐에 나왔던 모자(母子)를 여러 컷 소개하는 친절을 베푸는 바람에 판타지적 매력을 없애 버린다. 이야기의 축이 장애인의 마라톤이란 점도 지난 영화 ‘말아톤’이 주는 익숙함을 연상시킨다.
TV를 보고 감동해 먼저 영화화를 제안했다는 배우 신현준은 “영화를 찍으며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고 했다. 배우는 치유를 받았을지 몰라도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던 관객들에게까지 치유의 에너지가 옮겨오지는 못한다.
기존의 연기 틀을 뒤엎는 신현준의 장애 연기는 진지하고 자연스러워 기대 이상이다. 하지만 이미 배우 경력 16년째인 ‘정상(正常)인 신현준’의 이미지는 그의 이력만큼이나 관객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어 몰입하기 어려웠다. 신현준은 ‘말아톤’의 조승우나 ‘오아시스’의 문소리가 장애 연기를 할 때와는 달리 그의 연기력과 무관하게 이미 너무 유명해져 버린 배우였다. 상영 중. 전체 관람가.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