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이 두툼하다. 분량(67편)도 그렇거니와 내용도 묵직하다. 한 편 한 편 깊고 맛깔스럽다. ‘시인의 귀환’을 알린 지난해 현대문학상 수상작 ‘노숙’ 중 한 부분. ‘미안하다 /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 순한 너를 뉘였으니.’
한번 보면 피로한 제 몸에 대한 미안함으로 읽히고, 두 번 세 번 읽으면 온몸에 새겨진 고단한 인생이 찬찬히 전해지는 시다. 현대사를 몸과 마음으로 겪어오면서 “세속과 초월을 자유로이 넘나들게 된”(평론가 임우기) 시인의 모습을 헤아릴 만하다.
단정한 시어 속에 날카로운 분노가 서려 있던 첫 시집과 달리 제목부터 따뜻하고 차분한 이번 시집은 내용도 그러하다. 가령 ‘살아야지 // 일어나거라, 꽃아 / 새끼들 밥 해멕여 / 학교 보내야지’(‘꽃’)에서처럼 은근슬쩍 아내를 꽃으로 변신시키는 솜씨가 그렇다.
1990년대 초 노동해방문학지 사건으로 수배되기도 했던 운동권 출신인 김 씨는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노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불교방송 라디오프로그램 ‘살며 생각하며’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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