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에게 따지다/유호종 지음/288쪽·1만2000원·웅진 지식하우스
‘고통에게 따지다’의 저자는 고통을 인간 보편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감정으로 치부하고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않으려는 현실에 철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저자가 택한 방법은 고통의 모습과 개념을 재정의하고 원인과 의미를 분류한 뒤 이를 하나씩 검토해 그 안에서 해답이 될 만한 것을 가려내는 철학적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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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시도한 철학적 해법은 이렇다. ①‘이 고통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 자체가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이 고통은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②‘이 고통은 부당하다’고 말하려면 ‘인간은 의미 없는 고통은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천부인권설처럼 어떤 초월적 존재나 법칙을 전제해야 한다.→③초월적 존재나 법칙을 가정하면 의미의 확인이 불가능한 고통에도 초월적 의미는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 의미도 없는 고통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렇게 ①∼③의 성찰을 거치면 무의미한 고통을 겪어서 부당하다는 상황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초월적 존재나 법칙을 부정한다고 하자. 그런 사람은 ‘무의미한 고통도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 대신 ‘그래서 부당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자기의 고통이 무의미하므로 부당하고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의미가 없는 고통이라면, 경멸하고 무시하면 된다. 미친개를 두려워하고 잔혹한 고문 앞에 벌벌 떨고 바닥을 기었다고 해서 우리의 존엄성이 전혀 훼손되지 않는 것처럼.
저자는 마치 고통이라는 괴물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은 집도의 같다. 저자의 치밀하고 미세한 칼질 앞에서 고통은 낱낱이 해체되고 해법은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집요한 형이상학적 질문에 가끔 머릿속이 아득해져도 수려한 문장이 다시 책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 철학상담소/루 매리노프 지음·김익희 옮김/440쪽·1만5000원·북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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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많은 사람이 모욕과 피해, 질병과 불편함, 통증과 괴로움 등 개념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화를 자초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누가 당신의 발을 밟아 뼈가 부러진 것은 피해다. 반면 누가 당신의 발을 보고 ‘이렇게 못생긴 발은 처음 본다’고 말해 화가 났다면 이것은 모욕이다.
피해는 일방통행, 모욕은 양방향통행이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아도 피해를 볼 수 있지만 모욕은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절대 당할 수 없다. 이런 점만 분명하게 인식해도 많은 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모욕의 ‘반대’는 더 많은 모욕이 아니라 웃음이다. 지휘자 카라얀은 길을 걷다 세게 부딪힌 사람이 “이 병신아!” 하고 소리치자 인사를 하듯 모자를 들어올리며 “제 이름은 카라얀인데요” 하고 대답했다. 책에는 이처럼 구체적 사례와 함께 자신의 경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철학 실습이 각 장에 딸려 있다.
두 권의 철학서가 권하는 대안은 신경정신과, 종교에서 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와 ‘자기중심’의 강조다. 거기에 이르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철학자들이 권유하는 ‘생각 바꾸기’는 이를테면 ‘생각의 근력(筋力) 키우기’이다. 합리적 이성의 힘으로 스스로 현실을 분석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러 특정한 생각을 가지려고 반복적으로 노력하면 아령운동으로 근력이 강화되듯 사고 구조가 그에 적합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라’고 권하는 자기계발서에서 별 효과를 보지 못했던 독자라면 반가울 책들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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