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테러범과 인질들, 음악통해 하나가 되다…‘벨칸토’

  • 입력 2006년 4월 29일 03시 05분


◇ 벨칸토/앤 패쳇 지음·김근희 옮김/전2권·각 권 292∼296쪽·각 권 9500원·민음in

1996년 12월 17일 일본 왕의 생일 축하연이 열리던 페루 주재 일본대사관에 반정부 게릴라들이 난입했다. 정재계 인사 700여 명을 인질로 억류하고 수감 중인 동료 400여 명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127일간의 인질극을 벌였다.

‘벨칸토’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이 작품이 2002년 미국의 포크너상과 영국의 오렌지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저자 앤 패쳇은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차세대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소설은 남미 어느 나라의 부통령 저택에서 일본인 실업가 호소카와의 생일파티가 열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파티가 무르익을 즈음 무장한 테러단이 난입해 대통령을 찾는다.

테러단은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음을 알고는 파티에 온 사람들을 볼모로 잡는다. 실제 사건과 비슷한 설정이지만 소설은 여기에다 상상력을 덧입혀 테러범과 인질 간 교감의 현장을 섬세하게 펼쳐놓는다.

일차적으로 교감하는 방식은 언어를 통해서다. 파티 참석자 대부분과 인질 간에 말이 통하지 않아 일본인 통역자가 양쪽에 나선다. 처음엔 공격적인 대화가 오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열고 교류하게 된다. 테러리스트와 인질이 나란히 앉아 TV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같이 예배도 본다. 테러리스트와 인질범의 사랑도 피어난다. 언어를 뛰어넘어 서로를 결속해 주는 매개는 유명 소프라노 록산 코스의 아름다운 노래다. 사람들은 함께 모여 록산의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언제 반전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음악을 통해 하나로 묶이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와 총칼을 뛰어넘는 예술의 아름다움이 우아하고 드라마틱한 문장에 담겨 있다.

빠르게 읽히면서도 묘사가 치밀하다.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연이 풀려나올 때마다 인생은 저마다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뉴욕타임스는 ‘책장을 덮고 나면 입을 맞춰 주고 싶어지는 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원제 ‘Bel Canto(2002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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