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예술인들 “‘문화+과학’ 대박상품 꿈꾼다”

  • 입력 2006년 4월 29일 03시 05분


소리가 벽에서 반사되지 않는 ‘무향실’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김정진 교수. 무향실은 새로 만든 악기의 음색을 테스트하는 공간이다. 대전=홍진환 기자
소리가 벽에서 반사되지 않는 ‘무향실’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김정진 교수. 무향실은 새로 만든 악기의 음색을 테스트하는 공간이다. 대전=홍진환 기자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노영해(盧永奚·음악학) 교수가 연구실에서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흐드러지게 부른다.

옆방에서는 김정진(金廷珍·첼로) 교수의 지도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뚝딱대며 바이올린을 만들고 있다.

소설 ‘불멸의 이순신’의 작가 김탁환(金琸桓·문학) 교수는 책이 빼곡히 쌓여 있는 방에서 작품을 구상하며 사색에 잠겨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지난해 8월 대전 유성구 구성동 캠퍼스에 세운 문화기술(CT·Culture Technology)대학원의 풍경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중음악, 클래식 악기, 대하소설 같은 문화상품과 과학의 ‘만남’을 연구 테마로 삼고 있는 곳이다.

문학 음악 미술 분야 전공 교수 8명을 정점으로 KAIST 교수 등 30명의 과학기술인이 기술 콘텐츠를 지원하고 있다. 이곳의 학생은 석사과정 48명, 박사과정 21명 등 모두 69명.

이들은 가까운 미래에 문화와 과학을 융합해 세계적인 ‘대박’ 문화상품이 탄생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 ‘누구나 가수처럼’ 마이크 개발

노 교수는 트로트 애찬론자다. 트로트 고유의 음색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음대와 미국 텍사스주립대 음대에서 ‘서양 클래식음악의 역사’를 전공했지만 KAIST로 옮기고서는 트로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등 대중가요 6곡의 음파를 분석해 바이브레이션(떨림) 패턴을 알아냈다. 트로트 특유의 감칠맛 나는 여운의 비밀을 컴퓨터를 이용해 분석한 것.

이 데이터를 기초로 이미자 주현미의 바이브레이션과 흡사한 떨림 효과를 내는 마이크를 개발했다. 배경 목소리가 깔리는 ‘코러스 기능’도 마이크에 추가했다.

이 마이크를 잡으면 누구나 ‘가수 티’를 내며 노래할 수 있는 첨단 노래방 시스템이다.

○ 전혀 새로운 소리 내는 악기 연구

김정진 교수는 ‘악기를 직접 만드는 첼리스트’다. 2003년 KAIST로 자리를 옮기고는 3년 동안 학부생을 대상으로 ‘음향악기 제조와 평가실험’이란 과목을 맡아 강의하고 있다. ‘실험재료’는 바이올린 부품. 30명의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울림통의 구조와 줄이 걸치는 지점을 찾아내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을 제작한다.

“바이올린은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악기입니다. 과학기술 영재들을 위한 창조적인 연구테마를 찾다가 바이올린 제작 수업을 생각해 냈죠.”

김양한(金樑漢·기계공학) 교수는 1996년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은은한 울림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낸 ‘소리 전문가’. 그는 거문고 가야금 등 한국 전통악기가 음색은 좋지만 소리가 작아 야외연주에 적합하지 않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악기 개량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요즘 둘이서 새로운 악기 제작에 전념하고 있어요. 기존 악기로는 내지 못한 새로운 소리를 만들 겁니다.”(김정진 교수)

CT대학원에는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의 참신한 만남이 시도되고 있다. ‘불멸의 이순신’ 작가 김탁환 교수(아래)는 2년 후 세계적인 공상과학소설과 영화 시나리오를 발표할 계획이고, 서양음악사를 전공한 노영해 교수(위)는 누구나 ‘가수 티’를 낼 수 있는 첨단 노래방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대전=홍진환 기자

○ 모든 연구 소재로 SF소설 집필

“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세계를 다룬 소설을 써볼까 했는데 선수를 뺏겼어요. 마이클 크라이튼이 얼마 전에 썼더라고요.”

김탁환 교수는 한남대 문예창작과에 있다가 올 3월 이곳으로 왔다. 그는 공상과학(SF) 시나리오를 만들어 소설, 컴퓨터게임,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을 동시에 내놓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KAIST에선 모든 연구 테마가 SF 소재입니다. 10∼20년 뒤 가까운 미래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얘기를 만들 겁니다.”

대전=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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