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인(全相仁·사회학)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최근 출간한 저서 ‘우리 시대 지식인을 말한다’(에코리브르)에서 한국 지식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이렇게 진단했다. 전 교수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배출된 진보성향 학자들을 ‘오월의 지식권력’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전 교수는 이 책에서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반(反)지성주의를 부채질한 ‘신(新)지식인’운동, 노무현(盧武鉉) 정부 들어 헤게모니 재편과 대중영합주의에 편승한 지식과 권력의 결탁이 ‘죽은 지식인의 사회’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신지식인 운동이 도구적 지식을 통해 지식의 상품화에 성공한 이들을 지식인으로 규정하면서 전통적 지식사회의 권위를 무너뜨렸다고 지적했다. 이는 또 지식기반산업을 통한 국가경제 성장을 위해 지식과 권력이 유착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줬다는 것.
전 교수는 ‘현대사상’의 김성기 전 주간과 ‘인물과 사상’의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들고 나온 ‘게릴라 지식인’ 운동도 한몫을 했다고 분석했다. 제도권 지식인들의 무능과 나태에 대한 질타가 지나쳐, 이들이 유도한 지식의 탈엘리트화와 탈권위화가 지식권력 및 정치권력 교체에 보이지 않는 ‘기여’를 했다는 것. 비슷한 시기 지식인의 권위 회복을 겨냥했던 ‘선비론’ 역시 전통적 선비상에 담긴 과도한 정치지향성을 간과함으로써 오히려 ‘권력과 도덕의 결합’ 및 ‘권력과 지식의 유착’을 강화하는 효과만 낳았다는 것이 전 교수의 분석이다.
전 교수는 이런 배경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로 무장한 ‘오월의 지식권력’이 원동력이 돼 2002년 대선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세력 교체가 발생했고 이것이 지식인 사회 황폐화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1980년대에 배출된 진보성향 학자들이 학계 주류가 되는 것이 왜 문제인가. 전 교수는 크게 세 갈래에서 이를 비판한다.
첫째는 이들이 지닌 낙후성과 폐쇄성이다. 낙후성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집착을 말하고, 폐쇄성은 민족지상주의에 매달려 학문의 보편성을 이데올로기 차원의 화석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전 교수는 이를 “‘오월의 지식권력’에는 국사학은 있으되 역사학은 없고, 사회의식은 있으나 사회과학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로 비판했다.
둘째는 이들이 근거하거나 초래하고 있는 지성의 결핍 내지 지적 공황상태에 대한 비판이다. “오월의 지식권력은 대중에게 정치적으로 영합하면서 지적 호객행위까지도 불사하는 등 지식인 본연의 임무에 소홀했다. 인터넷 댓글이나 여론조사가 진리의 판관이 되고 참여와 평등의 이름으로 인민재판식 중우(衆愚)정치가 지배하는 곳에서 지식인의 입지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 교수의 지적이다.
셋째는 권력과 결탁해 한때 돌을 들었던 손에 칼이 쥐어진 ‘정치적 중무장’의 폐해다. “노무현 정부에 적극 동참하는 지식인들은 ‘학문적 진리’와 ‘사회적 정의’를 동시에 자부한다. 문제는 그만큼 오만과 편견이 횡행하고 무류성(無謬性)과 배타주의가 기승을 부릴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전 교수는 이런 지식과 권력의 잘못된 만남이 빚어낸 일대 지적(知的) 참사가 바로 황우석(黃禹錫) 교수 사건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고 ‘죽은 지식인의 사회’를 되살릴 방안은 무엇일까. 지식인들이 정치권력과 불가근불가원을 유지하며 배우고, 가르치고, 연구하는 자신들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이념과 무관한 진리 추구’라는 공통분모를 유지 확대하는 지식공동체를 가꿔가는 것이라고 전 교수는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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