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좌익의 맹장들 틈에서 주장(主將)이라고 할 책임비서에 뽑힌 인물은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던 김재봉(金在鳳·1891∼1944·사진). 34세에 불과했던 그가 책임비서가 됐던 것은 상대적으로 연장자였을 뿐 아니라 국제공산주의운동기구인 코민테른의 대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해 12월 체포된 김재봉은 6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뒤 일제의 감시와 병고에 시달리다 광복 한 해를 앞둔 1944년 숨을 거둔다. 그리고 1946년 3월 박헌영이 주도한 2주기 추도회를 끝으로 그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지난해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추서됨으로써 비로소 역사의 뒤안길 모퉁이를 막 돌아서 나오게 된 그에 관한 평전과 자료집이 출간됐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인 김희곤 안동대 교수가 집필한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경인문화사)이다.
책에는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마을 풍산 김씨 양반가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나 1931년 출옥을 전후해 부모와 동생, 둘째 아들을 병으로 잃고 그 자신마저 병마에 쓰러진 쓸쓸한 혁명가의 뒷모습이 담겼다. 특히 어린 시절 한학교육을 받은 그의 능숙한 한시와 옥중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효성 지극한 모습은 ‘공산주의자 김재봉’과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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