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6년 5월 2일 영국 왕 헨리 8세의 두 번째 부인이자 여왕(왕비가 여왕 칭호를 받은 경우도 있었음)으로 불렸던 앤 불린은 런던탑의 계단을 오르며 이렇게 한탄했다. 런던탑에 유폐되는 몸이었다.
3년 전 6월 앤은 기품 있는 모습으로 런던탑의 계단을 내려왔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리는 여왕 대관식에 참석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 무렵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여왕으로 즉위했고 뱃속에는 왕위를 이을 수도 있는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왕은 로마교회와 결별하면서까지 나와 결혼하지 않았던가.’ 이런 자만심으로 넘쳤다.
앤은 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인 캐서린 왕비의 시녀 출신. 금발에 파란 눈, 풍만한 몸매의 여성이 왕의 주변에 넘쳐나던 때 앤은 가냘픈 체구와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로 왕을 매혹시켰다.
왕은 캐서린과의 사이에 아들을 얻지 못하자 이혼하려 했지만 이혼을 금한 가톨릭 교리 때문에 교황청은 허락하지 않았다. 화가 난 헨리 8세는 가톨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설립했다. 헨리 8세는 결국 나라의 종교를 바꾸면서까지 앤과의 결혼을 감행한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의 사랑을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을 섹스 스캔들로 꼽았다.
그토록 강렬했던 사랑은 금세 사그라졌다. 아들을 원했던 왕의 기대와 달리 앤이 딸을 낳은 것이었다. 앤과의 결혼을 위해 파문까지 감수한 헨리 8세는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앤을 제거해야 했다. 간통죄로 런던탑에 감금된 앤은 2주 만에 처형됐다.
3년 남짓한 결혼 생활이었기에 ‘천일(千日)의 앤’으로 불리게 된 그는 죽기 전 남편 헨리 8세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저는 이제 사라집니다. 그러나 왕이시여, 명심하소서. 당신은 원하지 않을지 모르나 내 딸은 반드시 왕위에 오를 겁니다. 언젠가 이 왕국이 내 딸에게 감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앤의 말처럼 그의 딸은 훗날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왕이 됐다. 영국 왕실을 피로 물들인 후계자 다툼에서 벗어나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처녀왕’으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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