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수집가 6명 소장품 전시 ‘리빙룸…’전

  • 입력 2006년 5월 3일 03시 00분


《“누가 유명한 작가다, 앞으로 어떤 작품이 값어치가 오를 거다, 그런 말에 현혹되지 말고 개인적 만족감에 중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 나름대로 ‘서정기 미감’을 만족시키는 것이면 뭐든 수집합니다. 컬렉션은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서정기 패션디자이너) “남의 얘기 듣지 말고 내 취향에 맞게 사야죠. 직접 사 보는 게 중요합니다.”(홍송원 갤러리 서미 대표)》

지난달 28일 저녁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림미술관의 ‘리빙룸: 컬렉션 1’의 개막 행사에서 만난 미술품 컬렉터들은 하나같이 ‘재테크’가 아닌, ‘마음 가는 대로’의 원칙을 강조했다. 컬렉터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국내 실정에서 이들은 개인 소장품은 물론이고 사적인 공간에서 쓰던 가구와 소품까지 전시에 내놓았다. 자신이 아끼는 미술품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컬렉션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위해서다.

이들의 컬렉션 동기와 취향은 각기 달랐다. 8남매 중 막내였던 서정기 씨는 스물한 살 차이가 나는 큰누나를 따라 다섯 살 무렵부터 인사동 나들이를 했다. 만화경 같은 새로운 세계에 눈뜬 그는 중학교 때 깨진 사금파리 같은 것을 사 모았고, 고등학교 때는 어머니를 졸라 문갑과 문진 등을 샀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중국 소품을 찾아 벼룩시장에 가는 것이 취미였다. 단추부터 다리미까지 이것저것 모은다고 ‘미국 할머니’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사금파리에서 시작된 그의 컬렉션은 이제 백남준, 키스 해링, 존 배 등 현대 미술작품으로 확장됐다.

컬렉션 경력 30년의 홍송원 씨. 주부로서 집안을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가 아예 화랑까지 차렸다. 취향은 미니멀하면서도 정감 있는 팝 아트 계열.

탤런트 손창민 씨와 결혼한 젊은 컬렉터 이지영 씨는 1990년대 들어 ‘작품을 보고 즐거우면 좋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수집을 시작했다. “다른 물건을 사는 것보다 미술품은 오래 즐길 수 있잖아요. 보고 또 봐도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데요.” 칸디다 회퍼, 알렉스 캐츠, 짐 다인 등의 작품과 빈티지 가구로 거실을 꾸몄다. 캐츠의 소품 ‘빈센트’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그림 속 남자가 남편의 어렸을 적 모습과 같아서’라고.

컬렉터들은 원하는 작품을 얻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이나 고통도 크다.

“괴로움이 더 크죠. 유학시절 화랑에 돈을 나눠 갚기로 하고 백남준의 작품을 샀는데 그땐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덜컥 했죠. 친구들이 ‘왜 사서 고생이냐’고 했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몇 번씩 가서 보는데, 나중엔 눈에 아른거리고 꿈속에까지 나타난다니까요. 이거 중독성이에요.”(서정기)

컬렉션의 대상은 고가의 미술품만이 아니다. 가구나 옷, 남들 눈에 하찮게 보이는 소품도 훌륭한 수집품이 된다.

“고가의 작품은 팔아서 다른 작품으로 바꾸기도 하지만(웃음) 남들이 가치를 인정 안 해도 내가 좋아 산 것은 더 오래 간직하기 마련이죠.”(홍송원)

“친구에게 비싼 밥을 사줄 순 있어도, 아무리 졸라도 조그마한 사금파리 하나 절대 주지 않죠. 다 사연이 있는 물건이니까요. 그게 컬렉션의 묘미죠.”(서정기)

이들은 ‘충분히 공부한 뒤 사야 한다’(서정기, 이지영)와 ‘공부만 하다간 절대 컬렉션 못한다’(홍송원)로 의견이 갈렸지만, 좋은 컬렉터가 되기 위해선 “많이 보는 게 최고”라는 점에선 일치했다.

이들을 포함한 6명의 컬렉션을 전시장에 옮겨온 이번 전시의 기획자는 대림미술관의 협력큐레이터인 김선정 씨. 그는 “컬렉션과 컬렉터는 미술관의 꽃”이라며 “이 전시가 컬렉션을 재산 증식의 수단처럼 바라보는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7월 2일까지 대림미술관. 관람료는 어른 4000원, 초중고교생 2000원. 02-720-0667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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