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제 얼굴에서 어떻게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래도 여자들끼리 키스하고 껴안는 것보다는 높은 음을 내는 남자가 나오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요?”(카운터테너 이동규)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산적 같은 외모지만 목소리만은 여자처럼 고운 카운터테너 이동규(27). 특유의 맑고 섬세한 목소리로 세계적인 고(古)음악 지휘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소프라노 임선혜(29). 2000년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나란히 성악부문 결선에 올라 화제를 낳았던 두 사람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선다. 11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의 듀엣 콘서트.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성악가는 많지만 두 사람이 특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크를 비롯한 고음악 레퍼토리로 유럽무대에서 인정받는 차세대 스타 성악가라는 점 때문이다. 17, 18세기 음악을 당대의 방식으로 연주하는 고음악 ‘원전(原典)연주’가 세계적으로 붐인 흐름을 타고 카운터테너나 바로크음악 전문가수도 다시 각광받고 있는 것.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 음악은 유럽 성악가들이 아시아 성악가들에게 내주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인가 봐요. 목소리를 악기처럼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데다 서양의 종교와 정신세계를 표현한 시적인 내용이죠.”(임선혜)
“시대를 잘 타고 났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노래하면 ‘뭐 하나’ 하고 쳐다봤어요. 캐나다 밴쿠버 음대 입학시험에서 카운터테너 2곡, 베이스 2곡을 불렀더니 심사위원들이 놀라서 넘어지더군요.”(이동규)
카운터테너란 두성과 가성을 이용해 여성의 음역을 노래하는 남자가수. 여성들이 교회의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중세는 카스트라토 가수들의 전성기였다. 훈련에 의해 남녀 4성부를 넘나드는 목소리를 갖게 된 이 씨는 3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슈베르트 ‘마왕’의 4명의 주인공을 모두 소화해 내는 연기로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올해 1월 스페인 프란시스코 비냐스 국제성악콩쿠르에서 1위 입상한 이 씨는 11월 빈 국민오페라에서 ‘한여름 밤의 꿈’ 주인공 오베론 역으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다.
임 씨는 독일 유학 중이던 1998년 고음악계의 세계적인 거장 필립 헤레베헤의 지휘로 모차르트 ‘C단조 미사’를 불러 유럽무대에 데뷔했고, 이후 윌리엄 크리스티, 리카르도 샤이, 르네 야콥스, 지기스발트 쿠이켄 등 바로크 전문 지휘자들과 공연해 왔다.
두 사람은 이번 공연에서 고음악 레퍼토리인 헨델의 ‘올란도’ ‘리날도’ ‘톨로메오’,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 ‘티토 왕의 자비’ ‘루치오실라’ 등의 사랑을 주제로 한 아리아와 듀엣곡을 부른다. 특히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듀엣 아리아는 국내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카운터테너와 소프라노의 노래다.
임 씨는 “동규 씨가 워낙 연기력과 표현력이 좋아 마치 오페라를 보는 듯한 극적인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내년 2월 르네 야콥스 지휘로 베를린국립오페라에서 공연되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에도 함께 출연할 예정이다. 4만∼8만 원. 02-2005-0114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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