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눈덩이처럼 커지는 행복 ‘닭살 이벤트’

  • 입력 2006년 5월 4일 03시 05분


탤런트 최수종(왼쪽) 하희라 커플이 지난해 결혼기념일을 맞아 괌에서 ‘두 번째 허니문’을 펼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 소프트랜드
탤런트 최수종(왼쪽) 하희라 커플이 지난해 결혼기념일을 맞아 괌에서 ‘두 번째 허니문’을 펼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 소프트랜드
《사랑은 이벤트다.

이벤트는 행복 만들기의 ‘열쇠’로 통한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것이 곧 이벤트다. ‘해피니스 이즈 나우 히어(Happiness is now here·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

‘가장 쉬운 행복의 발견, 이벤트’를 쓴 오성인(36·캐나다 밴쿠버) 씨는 “서구에서는 ‘이벤트 달력’을 만들어 가족 행사 챙기는 것을 소중한 의무로 여긴다”고 말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49) 소장은 “주기적인 이벤트는 서로 배려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줘 부부와 자녀 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최근 한국의 가정에서도 행복 찾기 이벤트를 펼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이벤트의 황제’로 불리는 탤런트 최수종(44)을 비롯해 이벤트로 사랑지수를 높이는 부부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탤런트 최수종이 말하는 ‘이벤트 노하우’

○ 행복을 유혹하는 기술

최수종은 아내 하희라(37)와의 결혼기념일을 비롯해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한다. 지난해 결혼기념일 이벤트의 콘셉트는 ‘두 번째 허니문’. 1993년 한국과 괌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이들은 지난해 괌을 찾아가 결혼식을 다시 올렸다. 이 이벤트를 위해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당시 결혼식을 올렸던 장소를 찾아가 똑같이 재현했다.

“결혼기념일을 전후해 이벤트를 펼치지만 지난해에는 좀 더 특별했습니다. 아내에게는 두 번째 허니문의 기쁨을, 결혼식에 참석한 두 아이에게는 아빠 엄마와 연결된 추억을 남겨 주고 싶었습니다. 이벤트는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마음이 담긴 이벤트가 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는 이벤트의 황제라는 별명을 싫어하지 않았다. 황제라는 말이 부담스럽지만 이벤트를 잘하는 것은 ‘튀는’ 게 아니라 가족을 위한 당연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가 이벤트에 쏟는 정성도 대단하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하고 재미있는 현장이나 이벤트에 적절한 장소를 보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둔다. 물론 ‘이벤트 감독’은 최수종. 그는 시나리오 연기 연출 등 1인 3역을 하면서 이벤트를 하는 이유와 소품(선물) 등이 들어간 상황을 꼼꼼하게 점검한다.

“이벤트 상황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입가에 웃음이 돌거나 눈물이 나는가를 따져 봅니다. 경험으로 보아 내게 느낌이 오지 않는 이벤트는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 달리는 승용차 DJ로

그가 꼽는 최고의 이벤트 성공작은 3년 전 승용차 DJ. 하희라와 가까운 여자 선후배들이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 놀러갔다.

그는 아내에게 차에서 들으라며 테이프를 건네줬다. 하희라와 함께 차를 탔던 여성들은 그 테이프를 듣고 배꼽을 잡았다. 테이프에서는 “이 모임에 참석하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목적지까지는 약 40분 걸립니다. 가시는 길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자, 박수 치세요!”라는 DJ를 흉내내는 최수종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터져 나왔다.

이 테이프는 그가 집에 있는 노래방 기기를 이용해 2시간 동안 녹음한 것. 그는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몰래한 사랑’ 등 노래 8곡을 직접 골라 불렀고, 노래 사이에는 간식이 숨겨진 장소와 ‘개그성’ 멘트를 쉴 새 없이 날렸다.

“아! 그 이벤트로 사랑 많이 받았습니다. 마지막 멘트로 ‘지금 좌석 밑을 더듬어 보면 흰 봉투가 있는데 거기에 사례비 넣어 달라’고 했더니 8만 원이 모여 나중에 뒤풀이 비용으로 썼답니다. 이벤트는 꼭 돈을 많이 들여야 하는 게 아니라 정성과 아이디어가 있으면 쉽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 문자메시지 하루 20여건 주고 받아

“천년 만에 한 번 우는 새의 눈물이 바다가 될 때까지 사랑해요.”(하희라)

“그 바다가 된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사랑합니다.”(최수종)

“당신을 죽어도 사랑합니다.”(최)

“죽지 마세요. 살아서 사랑해 주세요.”(하)

이들은 결혼 14년째이지만 각별한 애정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하루 20여 건 주고받는다. 말도, 사랑도, 이벤트도 자꾸 하다 보면 점점 더 커지는 ‘눈덩이 효과’가 있다는 게 그의 이벤트 지론이다.

“내 이벤트에 감동한 아내는 친정 식구에게 이야기하고, 그분들은 다시 다른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최수종이 바보가 된다는 느낌보다 이런 식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소문난 잉꼬부부에게 부부싸움을 잘 마무리하는 법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전 어머님과 다투는 모습을 본 적 없습니다. 우리 부부도 그렇고요. 어쩌다 아이들이 티격태격할 때 ‘우리 집에서 싸우는 것은 너희들밖에 없다’고 하면 금세 수그러들어요. 다툴 일이 없지는 않겠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만큼 큰일이 아닙니다.”

올해 결혼기념일 이벤트를 귀띔해 달라고 물었다.

“허, 아직…. KBS 사극 ‘대조영’의 주인공을 맡아 3개월째 몸을 만들면서 드라마 준비를 하느라 바빠요. 11월이면 촬영이 한창인데 걱정이네요.(웃음)”

카페 통째로 빌려 두번째 프러포즈… 장인장모와 함께 여행

한강유람선 생일파티

정보기술(IT) 업체에 다니는 이정훈(36) 씨와 간호사 임선숙(35) 씨 부부는 결혼한 지 3년 됐다. 이 씨는 지난해 10월 아내의 생일을 맞아 한강유람선에서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아 이벤트를 마련했다. 이날은 결혼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신혼 때부터 근육에 힘이 빠지는 중증 근무력증을 앓아 온 아내가 완치 판정을 받은 지 1년이 가까워지는 날이기도 했다.

이벤트업체 직원들은 바로 이 씨 부부의 옆 테이블을 꽃잎 램프 초 풍선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 다른 사람의 생일기념 이벤트로 보이게 했다. 이 씨가 건넨 선물 상자 안에는 음성 편지가 녹음된 헤드폰이 들어 있었다.

임 씨는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왜 남편은 생일 기념 식사를 옆 자리 같은 이벤트로 만들지 못했을까 하고 속으로 원망했다”며 “병을 이기게 해 준 남편의 사랑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1000개의 촛불과 프러포즈

KTF 대외전략팀 백종우(32) 대리는 3월 11일 동갑내기 아내 문선희 씨를 위해 프러포즈 이벤트를 시도했다.

올해 결혼 5년째인 그가 다시 프러포즈를 한 것은 이벤트다운 이벤트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준비한 이벤트는 ‘1000개의 촛불 속 두 번째 프러포즈’. 카페를 빌려 1000개의 초로 꾸민 뒤 연애 시절부터 최근의 사진을 담은 영상편지 ‘당신은 내가 사는 이유입니다’를 상영했다. 이후 꽃다발과 함께 부인에게 “제 청혼을 받아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문 씨는 “서로에게 늘 충실해도 감동과 재미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기 쉬운 게 결혼생활 ”이라며 “두 번째 프러포즈는 새 결혼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가 됐다”고 말했다.

룸서비스와 마사지 서비스

서울보증보험 동대문지점 양선(45) 지점장과 아내 유선희(44) 씨는 올해로 결혼한 지 18년이 된 중년 부부다(사진). 양 지점장은 결혼 이후 아침을 침대에서 먹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아내가 식사를 침대까지 가져오기 때문이다. 신혼 초 잠이 많아 밥을 자주 거른 양 지점장을 배려한 게 일상이 된 것이다.

양 지점장은 “전날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침대까지 아침밥을 가져오는 아내가 요즘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에 먼저 화해를 청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정택(31·무역업) 씨는 여유가 생기면 아내 배명숙(30) 씨에게 전신 마사지 서비스를 한다. 이 마사지 서비스는 군 복무 시절의 추억이 결혼생활의 이벤트가 된 것이다. 이 씨는 “돈도 시간도 없었던 육군 졸병 시절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는데, 지금은 부부 간의 행복 열쇠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결혼 300일 기념 여행

서민석(37·하이닉스반도체 선임연구원) 씨는 최근 아내 김용미(30) 씨와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로 결혼 300일 기념 여행을 다녀왔다. 서 씨는 “우리가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장인 장모를 모신 이벤트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둘만의 여행도 의미가 있고 불편할 수도 있는 처가식구와 함께 여행을 가 고맙다고 했다. 두 사람은 발리의 석양을 보면서 신혼여행에서 못 다 세운 인생계획을 세웠다.

여행 이벤트에 감격한 김 씨는 “이번 여행에서 우리 식구가 2명이지만, 갈 때는 3명으로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아내는 또 귀국 비행기에서 “지금 우린 구름 위에 떠 있네. 지금 너무 행복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야. 고마워”라고 했다. 이벤트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서 씨는 지금 2세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의 편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귀기에 편한 당신의 나이와 부르기에 편한 당신의 이름과 다가가기에 좋은 당신의 온도와 함께하기에 좋은 당신의 숨결을 사랑합니다.’

2004년 10월 결혼한 LG경제연구원 박지원(30) 선임연구원이 남편 이진혁(33·LG텔레콤 과장) 씨에게 받은 편지의 일부다.

두 사람은 작은 선물과 함께 부부생활과 관련된 글을 편지나 e메일로 수시로 주고받는다. 박 연구원도 아침에 먼저 일어나 샤워하는 남편이 볼 수 있게 밤늦게 쪽지를 적어 화장실 유리에 붙여 둔다. 남편의 출장 가방에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쪽지를 넣어 두기도 한다.

현금 이벤트

웨스틴조선호텔 박준(36) 정보혁신팀 대리와 박정아(30) 씨는 결혼한 지 3년된 부부다. 어느 날 심야에 귀가한 박 대리는 이벤트로 아내의 심기를 달랬다. 그는 마치 함을 팔 때처럼 현관에서 침실까지 1만 원권 10장을 깔아 놓았다. 아내는 남편의 장난기에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평소 술을 한잔하면 ‘이벤트 끼’가 발동한다”며 “아내가 이벤트에 마음이 풀렸는지 다른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끔 미안한 일이 생기면 현금이 든 봉투를 냉동실에 넣어 둔다. 냉장고를 정리하다 미소 지을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남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고 한다.

△도움말=‘러브센스’(0505-594-1004, www.lovesense.co.kr) ‘이벤트 하우스 봄’(02-2642-0881 www.boms.co.kr) ‘프로포즈 사랑愛’(02-3673-3780 www.sarangae.net)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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