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100주년 기념 만해 미발표 漢詩 ‘심우시’ 공개

  • 입력 2006년 5월 4일 03시 05분


만해 한용운(1879∼1944)의 미발표 한시가 발견됐다.

미당 서정주(1915∼2000)가 10년 전 “10년 후에 발표하라”고 써준 축시도 공개됐다.

우리 문학사에서 빼어난 큰 줄기로 자리한 시인들의 소중한 시편들이 먼 길을 돌아 우리 곁에 온 것이다.

동국대는 3일 만해의 한시(漢詩) ‘심우시(尋牛詩)’가 적힌 10폭짜리 병풍을 공개했다. 만해는 이 학교의 설립 첫해 입학생이다. 이 병풍은 동국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4∼31일 대학도서관에서 열리는 ‘동국 백년전’ 전시회에서 공개된다.

만해의 ‘심우시’는 모두 10편. 중국 송나라 때 선승이었던 확암사원(廓庵師遠)이 마음의 수련을 주제로 쓴 7언절구인 ‘심우도송(尋牛圖頌)’의 운(韻)을 따서 지은 것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사람이 진리를 깨쳐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과정에 비유한 것으로 확암의 ‘심우도송’과 주제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만해의 심우시는 확암에 비해 역동적이고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동국대 김상일(국문학) 교수는 설명한다. 특히 만해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자신의 거처를 ‘심우장(尋牛莊)’이라 지었고 같은 제목의 시조까지 남겼을 만큼 ‘심우’의 함의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한시는 성(聖)과 속(俗)의 공간을 구분하지 않았던 만해의 사상적 지향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뒷얘기도 흥미롭다. 이 병풍의 기증자는 동국대 동문인 정재철 전 의원. 만해에게 화엄경을 배운 경봉선사에게 병풍이 전해졌다가 이것이 경봉선사의 유발상좌(有髮上佐·스님이 아닌 재가제자)였던 정 전 의원의 부인 전금주 씨(작고)에게 전달됐던 것. 지난달 말 병풍을 기증받을 때만 해도 만해의 친필 유묵으로만 알았는데, 글귀 내용을 검증해 보니 미공개 한시라는 게 밝혀졌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문학사에 만해의 소중한 시 10수를 더하게 됐다.

미당 서정주가 남긴 시는 ‘동국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라는 제목의 축시다. 동국대 출신이며 20년을 동국대 교수로 재직한 미당이 100주년을 10년 앞둔 1996년 3월 기념사업회의 청탁을 받아 쓴 것이다. 미당은 “100주년을 맞아 쓰면 될 텐데 벌써 청탁한다”면서 웃었다고 한다. 당시 국문과 교수로 미당의 자택을 찾아갔던 홍기삼 총장은 “100주년이 되는 날 기념식장에 오셔서 꼭 낭송해 주시길 바란다”고 청했고, 미당은 “문제없다”고 답했다. 미당은 두 달 만에 원고지 5장 분량(6연 32행)의 시를 건네줬고 이 축시는 도서관 귀중본 자료실에 보관됐다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공개됐다. 원고는 13일까지 교내에 전시됐다가 금고에 보관되고 올가을 타임캡슐에 들어간다.

시구에는 미당의 모교 사랑이 가득하다. 대선배 만해에 대한 흠모도 들어 있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33인 중의 한 분인 한용운 스님 밑에서/우리 동국대 학생들은 각지로 나뉘어져 이 일을 이루어냈나니’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미당 서정주가 동국대 개교100주년을 10년 앞둔 1996년 100주년 기념사업회에 써준 축시 원고와 미당 선생의 생전 모습(작은 사진).사진 제공 동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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