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예술 평론가 이영미(45) 씨는 ‘대장금’을 비롯해 ‘맛있는 청혼’ ‘내 이름은 김삼순’ 등 풍성한 음식을 선보이는 방송 드라마를 보며 이렇게 부르짖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식욕을 사정없이 자극하는 음식들을 밤늦은 시간에 보여 주잖아요. 정말 괴롭죠. 프로이트가 먹을 것 없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면 억눌린 성욕 대신 억눌린 식욕에 주목하지 않았을까요?”
대중가요 연극 드라마를 주로 비평해 온 이 씨가 관심사를 밥상으로 돌려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황금가지)를 펴냈다.
잃어버린 맛의 역사를 더듬어 본 우리 음식 문화사라 할 이 책에는 이 씨의 체험이 녹아 있다. 그녀는 “친가는 황해도 개성, 외가는 전북, 시집은 경남인 덕택에 한국 음식의 중요한 계보를 두루 물려받았다”고 자부한다. 두부를 찍어 먹을 때 샘표간장 701과 샘표간장 501의 맛을 구분해 내는 ‘절대미각’을 지닌 남편과 살면서 날로 음식 솜씨도 늘었다. 1992년 경기 이천시의 텃밭 딸린 흙집으로 이사 간 뒤로는 직접 야채를 기르고 된장과 맥주를 담가 먹으며 살고 있다.
음식 솜씨가 점점 늘면서 그녀가 “꼭 내 손으로 하리라”고 결심하고 고른 세 가지 기본 음식은 김치, 장, 술. 모두 발효 음식이다.
된장과 간장을 직접 담그는 경험을 통해 이 씨는 우리 음식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새삼 깨닫는다. 된장이나 간장을 담그는 데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중노동을 요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내심이 없다면 제대로 된 장은 나올 수 없다.
“된장이 제대로 되는 것은 부엌에서 할 일을 끝낸 뒤부터죠. 햇볕과 공기가 도와줘야 해요. 최소한 겨울을 한 번 나야 하며 제대로 맛이 들려면 두 해 겨울을 묵혀야 하거든요. 자연이 정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그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요리를 유일한 호사스러운 취미로 꼽는 이 씨는 제철 과일만 먹겠다는 신념으로 요즘 쏟아져 나오는 과일들도 먹지 않는다. 딸기는 5월 말, 토마토는 6월 말에서 7월, 참외는 8월에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음식을 덜 급하게, 철에 맞추어 즐겁고 맛있게 먹어도 되는데 도시가 사람을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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