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지난해 11월 24일 오전 11시. 서울 양천구 신월동 전영숙 씨의 집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예림이의 백일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전 씨는 예림이를 목욕시키고 예쁜 옷을 입혔다. 사과, 바나나, 케이크 등 음식도 마련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예림이를 축복했다.
예림이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전 씨의 품에 안겼다. 8년 전 위탁모로 일하기 시작한 전 씨가 받아들인 25번째 아이다.
예림이는 ‘울보’다. 예림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씨뿐이다. 그는 예림이가 울 때마다 등에 업고 동요를 불러 주기도 하고 엉덩이를 토닥거려 준다.
그는 아기가 없어질까 봐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에 나갈 때도 꼭 문을 잠근다. 전 씨는 “다른 아기보다 키우기 힘들었지만 예림이에게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는 생각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늘 자기 전 예림이를 위해 기도했다.
“예림이가 좋은 양부모를 만나게 해 주세요.”
##장면2=드디어 소원이 이뤄졌다. 전 씨는 지난달 21일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예림이가 11일 미국으로 떠나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8일은 예림이의 양부모를 만나는 날이다. 전 씨는 7일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입양 통보는 늘 우울증을 부른다. 양부모에게 줄 예림이의 사진과 건강기록부를 정리하다 보니 예림이와 함께한 9개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위탁기간은 국내 입양은 한 달, 해외 입양은 여섯 달 정도 걸린다. 예림이는 다른 아이보다 전 씨와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예림이는 백일 이후 잘 웃는 아기가 됐다. 요즘은 무엇이든 입에 물고 벽을 붙잡고 서서 조금씩 걷기도 한다.
예림이도 눈치를 챘는지 며칠째 전 씨의 품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 우는 횟수도 늘었다.
전 씨는 돌봐 온 아이가 해외로 갈 때 절대 공항에 나가지 않는다. 자신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기를 보내는 일은 너무 힘들다. 간신히 잠이 든 예림이의 얼굴을 보니 새 생활에 적응해야 할 예림이가 안쓰럽기만 하다.
##장면3=지난해 12월 21일 미국 뉴멕시코 주. 한국 홀트아동복지회가 전화로 “예림이에 대한 모든 서류 절차가 끝났습니다”고 알려 왔다.
“드디어 내 딸이 생겼구나.”
이옥주 씨는 너무 기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여기저기 말하고 싶고 떠들어 대고 싶다. 처음 연애하던 기분이 이랬던가 싶다”는 글을 남겼다.
남편은 8년 전 결혼하기 이전부터 입양하자고 말했지만 “하나를 키우기도 힘들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첫째(7)와 둘째(3)를 낳은 뒤 주변에서 입양한 아이와 행복하게 지내는 가족을 보니 점차 마음이 바뀌었다.
입양 의사를 밝히자 이웃과 친척들이 한결같이 축하의 말을 건넸다. 입양은 미국에선 익숙한 ‘출산 문화’다. 이 씨는 자연스레 공개 입양을 택했다. 그는 2년 동안 까다로운 입양 절차를 거쳤다. ‘재클린’이라는 예쁜 이름을 미리 지어 놓았다.
##장면4=8일 오전 10시 반. 이 씨와 그의 남편 토머스 고스라우(39) 씨가 서울 마포구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 사무실을 찾았다. 이 씨는 “예림이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며 초조해 했다.
잠시 후 전 씨가 예림이를 업고 나타났다.
“너구나. 세상에….”
이 씨의 첫마디였다. 그는 예림이의 환한 얼굴을 보며 활짝 웃었다.
이 씨의 여동생이 “언니 어렸을 때와 꼭 닮았네”라고 말했다.
이 씨는 예림이를 위해 손수 만든 곰인형을 꺼냈다. 하지만 낯선 얼굴을 본 예림이는 ‘울보’로 되돌아와 있었다.
이 씨는 전 씨에게 카네이션 화분을 주며 “예림이를 건강하게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 예림이가 크면 어버이날 꼭 카네이션을 들고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전 씨는 예림이의 첫돌 때 입을 한복을 선물했다.
이 씨는 11일 예림이를 최종적으로 데려가기로 하고 전 씨에게 일단 다시 맡겼다.
“어린 나이에 어른도 감당하지 못할 이별을 몇 차례나 겪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제가 더 사랑해야죠.”(이 씨)
“해외 입양이라도 한국인 엄마에게 가니 다행이에요. 그래도 참 많이 서운하네요.”(전 씨)
어느새 예림이는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고 전 씨의 등에 업혀 잠을 자고 있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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