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스튜디오. 원로 피아니스트 정진우(78·서울대 명예교수) 씨의 경쾌한 반주에 맞춰 머리가 희끗한 70, 80대 성악가들이 오페라 ‘리골레토’의 4중창을 연습하고 있었다. 만토바 공작 역을 맡은 테너 안형일(79·서울대 명예교수) 씨는 30대처럼 싱싱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는 노래를 불렀다. 이어 백발의 음악가들은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을 합창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제1세대인 원로 음악인 9명이 스승의 날 이튿날인 16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2006 큰 스승 큰 사랑’ 그랜드 콘서트. 수많은 기악 연주자와 성악가들을 제자로 길러낸 음악계의 큰 스승들이 무대에 서는 이 음악회는 2001년에 이어 두 번째다.
“5년 전 제1회 무대에 섰던 선생님들의 절반 정도가 안 보여요. 최고령 피아니스트였던 김원복 선생과 바이올리니스트 박민종 선생은 타계하셨고, 성악가 조상현 황병덕, 첼리스트 원용성 선생님은 투병 중이십니다. 우리도 과연 5년 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지….”(안형일)
이번 음악회에서 성악가 오현명, 안형일, 조태희(69·소프라노·한양대 명예교수), 김신자(66·메조소프라노·이화여대 명예교수) 씨는 ‘동심초’ ‘못잊어’ ‘진달래 꽃’ 등의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 외국 가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정진우, 장혜원(67·이화여대 명예교수), 바이올리니스트 백운창(73·원로 교향악단 악장) 씨는 솔로 연주를 선보인다.
신수정 정명훈 이방숙 김용배 강충모 백혜선 씨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피아니스트들을 제자로 길러낸 정진우 씨는 “후배들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무대에 선다”고 말했다. 정 씨는 “요즘 젊은 연주자들의 테크닉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면서 “그러나 청중을 울리는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인생의 수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정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백혜선 씨는 “‘30대는 음악이 뭔지 모르고, 40, 50대는 음악의 냄새를 맡기 시작하며, 60대에는 음악에 눈치를 채고, 70대가 되면 음악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격언이 있다”며 “선생님들이 끊임없이 무대에 서시는 모습만으로도 후배들에게는 큰 본보기이자 채찍이 된다”고 말했다. 3만∼5만 원. 02-3436-5222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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