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때문에 하나씩 옛날 작품 다시 꺼내 보면 다 생각나요. 언제, 어느 작품에서 누가 신었는지. 밤새 배우 의상, 무대, 신발 꿰매고 옷 바느질하느라 고생했던 일들도 다 떠오르고, 눈물나는 일, 열 받은 일 수많은 기억이 다 떠올라.”
이번 전시는 단순한 기념전이나 회고전이 아니다. 그는 ‘이병복 없다’와 함께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가 대표로 있는 극단 ‘자유’ 역시 40주년 기념 공연으로 준비 중인 창단작 ‘따라지의 향연’(6월 28일∼7월 9일·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을 마지막으로 해체된다.
“나이가 턱걸이니까, 이참에 다 설거지해 버리려고….”
‘이병복 없다’라는 전시회 제목은 그가 붙였다. 무대미술은 무대미술로서만, 의상은 의상으로서만 존재할 뿐 그 안에 이병복 개인은 없다는 의미다.
첫 작품인 ‘따라지의 향연’(1966년)부터 최근작인 ‘피의 결혼’(2004년)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무대의상과 소품 등 1000여 점이 전시된다. 이 중에는 ‘무대미술 올림픽’으로 꼽히는 프라하 콰드리날레에서 수상한 작품도 포함돼 있다. 40년간 그가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힘들게 보관해 온 우리 연극사의 소중한 ‘기록’들이다.
박물관 내 갤러리 벽면을 가득 메운 의상과 소품들을 보다 보면, ‘이병복 없다’라는 제목과 달리, 40년 세월 동안 무대 뒤편엔 늘 ‘이병복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1966년 4월 그는 연출가 김정옥과 의기투합해 극단 ‘자유’를 창단했다. 1968년에는 서울 명동에 국내 최초의 소극장 ‘카페 떼아트르’를 개관해 소극장 운동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배우와 연출가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늘 어두컴컴한 무대 뒤를 지키며 입버릇처럼 ‘뒷광대’를 자처해 온 그였지만, 무대의상과 소품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행여 배우들이 무대의상을 휙 벗어던지거나 소품을 함부로 대하면 어김없이 그의 호통이 날아왔다.
“너는 대사를 하는 배우지만, 얘들은 대사 없는 배우들이다. 얘들 없으면 너도 없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그는 ‘자식 같은’ 이 작품들을 모두 불태울 예정이다. 연극계에도 큰 손실이지만, 개인적으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아끼는 것일수록 없애버려야지. 남겨 뒀다가 천덕꾸러기 되지 말라고…. 무대의상은 사람이 입었던 거라 1년에 한 번씩 거풍도 시켜 줘야 해서 아무나 관리를 못하는데 (내가 죽으면) 누가 하겠어.”
“뜻이 있는 사람은 돈이 없고, 돈이 있는 사람은 뜻이 없더라.”
그는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분신과도 같은 작품을 자기 손으로 태워 없애야 하는 서글픔과 함께 ‘연극 박물관’ 하나 없는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도 묻어났다.
“정부도 세계화다 나발이다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연극박물관이나 하나 지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박물관이라도 있으면, 후학들에게 ‘예전에는 이런 것도 의상이라고 했단다’ 하며 보여 줄 수 있을텐데….”
전시는 27∼31일 오전 11시∼오후 5시. 5000원. 02-762-0010
남양주=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