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3500여 종의 책을 펴냈고 매출 순위 1위인 출판사지만 1966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 10평짜리 옥탑방 사무실 한 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당시 서른두 살에 혈기가 넘치던 박맹호(72) 회장은 ‘Voice of people(민중의 소리)’을 염두에 두고 ‘민음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민음사의 역사는 국내 첫 한글세대가 성장해 온 역사이자 한국 문학, 인문학이 성장해 온 궤적과 겹쳐진다. 창립 당시만 해도 출판계는 전집류의 외판 서적이 장악하고 있었고 단행본은 맥을 못 추던 때였다.
창작 소설 단행본의 출판 자체가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민음사는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소문의 벽’,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조해일의 ‘아메리카’ 등을 잇달아 펴냈다.
바랑 하나만 짊어지고 제주도에서 올라온 시인 고은,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 씨와 1974년 ‘오늘의 시인 총서’를 기획할 때도 시집은 비인기 장르였고 한용운 서정주 등 대가들의 작품 말고는 시집으로 묶어 내는 걸 엄두도 내기 힘든 형편이었다. ‘오늘의 시인 총서’는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를 시작으로 황동규의 ‘삼남에 내리는 눈’ 등 오늘날 거목으로 인정받는 시인들을 발굴해 소개했다. 시집에서 처음으로 가로쓰기를 채택한 것도, 오늘날 시집 사이즈로 정착된 국판 30절 판형을 도입한 것도 민음사가 시도한 모험들이다.
1976년 제정돼 이문열 한수산 조성기 등 걸출한 작가들을 배출한 ‘오늘의 작가상’도 마찬가지였다. 첫 수상작인 한수산의 ‘부초’는 당시 한 중앙일간지가 실시한 5000만 원 고료 현상모집에서 탈락한 작품. 그와 무관하게 오로지 작품에만 주목해 보석을 건져 냈다.
박 회장은 “안전한 것 대신 위험하고 시기상조인 선택을 해왔던 덕분에 오늘의 민음사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994년에는 아동도서를 출판하는 자회사 ‘비룡소’를 설립했고 ‘황금가지’ ‘사이언스북스’ ‘황금나침반’ ‘세미콜론’ ‘민음in’을 차례로 선보이며 출판그룹으로의 영역을 확장했다. 출판계에서는 민음사를 ‘출판 사관학교’라고 부른다. ‘오늘의 작가상’으로 배출한 문인들뿐 아니라 소설가 김원우, 시인 황지우, 최승호 씨, 북디자이너 정병규 씨, 궁리출판사 이갑수 대표 등이 민음사 주간이나 편집장을 거쳤다.
40년간 문학, 학술서의 선두 주자였던 민음사의 첫 책은 엉뚱하게도 ‘요가’다. 박 회장은 “국내에 요가를 처음 소개했고 2만 부가 팔렸는데 첫 책이 ‘요가’라면 남들이 웃을 것 같아 10여 년간 공개적으로 말도 못했다”며 웃었다.
‘핵심을 겨눈다’는 뜻을 되새기며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의 이미지를 출판사 로고로 삼았던 박 회장은 현재 조준하고 있는 핵심은 “신인 작가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참신한 국내 작가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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