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속 진품명품 소중한 나들이…간송탄생 백돌 특별대전

  • 입력 2006년 5월 16일 03시 03분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및 보물과 대표적 미술품들이 21일부터 6월 4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특별전에 나오는 국보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 국보 70호 ‘훈민정음’(왼쪽부터). 사진 제공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및 보물과 대표적 미술품들이 21일부터 6월 4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특별전에 나오는 국보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 국보 70호 ‘훈민정음’(왼쪽부터). 사진 제공 간송미술관
국보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 70호 훈민정음, 국보 294호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 겸재 정선의 대표작들과 김홍도 신윤복의 풍속화, 추사 김정희와 한석봉의 글씨….

교과서에서 봤던 국보와 보물, 한국 미술사의 걸작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21일부터 6월 4일까지 개최하는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1906∼1962)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대전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간송미술관이 소장 중인 국보 12점, 보물 10점을 포함해 100여 점이 선보인다.

해마다 봄가을에 짧게 열리는 정기전에 나오거나, 어쩌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찬조 출연’한 것을 제외하면 좀처럼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는 간송미술관의 명품 문화재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간송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간송이 수집한 청자, 백자, 회화, 서예 중에서 각 부문의 대표작만 선정해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기로 했다”며 “이번이 70회째 전시지만 시대별 대표작을 총망라해 내놓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간송미술관은 도자기뿐 아니라 겸재와 추사 작품의 경우 양은 물론 질적인 면에서도 국내 최고 수준의 소장품을 자랑한다.

최 실장은 “이번 전시를 보면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기본 자료를 모아 준 인물이 간송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 문화재가 없었다면 어떻게 겸재와 추사 연구를 하고, 기록만 갖고 갑론을박으로 식민사관을 바로잡을 수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간송은 막대한 재산과 문화재 애호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호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1906년 서울 장안에서 갑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휘문고보, 일본 와세다대 법과를 다녔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간송은 서화 골동에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과 교유하면서 문화재 수집을 시작했다.

간송은 문화재를 구입할 때 금액을 깎는 일이 없었고, 판매자가 가치를 잘 모르고 싼값을 부르면 아무 말 없이 두 배건 세 배건 자신이 판단한 가치대로 대금을 지불해 주었다.

1937년 간송이 도쿄에 살면서 최고급 고려청자만을 수집한 영국 변호사 존 개즈비의 소장품을 한꺼번에 인수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일본이 곧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예견한 개즈비는 귀국할 결심을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간송은 화급하게 도쿄로 가서 개즈비와 담판하고 소장품을 전부 넘겨받았다. 이를 위해 충남 공주에 있던 5000섬지기 전답을 처분했다.

큰 기와집 한 채의 값이 1000원 하던 1943년, 간송은 ‘훈민정음’ 원본이 경북 안동에서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거간꾼에게 1만1000원을 주며 “1000원은 수고비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훈민정음 원본을 손에 넣었고 이것이 바로 현재의 국보 70호다. 이렇듯 간송의 소장품에는 하나하나 사연이 담겨 있다.

아무 꾸밈새도 없이 풀이 무성한 뜰, 1938년 개관 이후 창틀 하나 안 바뀐 채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성북초등학교 정문 옆에 있다. 무료. 02-762-0442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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