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무려 4시간 동안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아카데미 시상식. 그 시작은 이렇게 초라했다. 수상 소감도 없었고 카메라 플래시도 터지지 않았다. 후보는 물론 수상자도 대부분 불참해 썰렁한 분위기였다.
당시 미 영화계는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대공황의 불안 속에서 할리우드는 사치와 부도덕의 상징으로 치부됐다. 영화계 내부에서는 노사 분규가 이어졌고 제작방식은 무성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던 때였다.
AMPAS는 영화인의 결속을 위해 시상식을 마련했다. AMPAS 회원들은 크게 배우 작가 감독 제작자 기술자 등 5개 분야로 나눠 수상자를 선정했다.
초기 시상식 때는 수상자가 3개월 전에 발표됐다. 긴장감은 없었다. 1941년부터 비밀투표 방식이 도입됐다. AMPAS는 발표 직전까지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 흰색 봉투와 함께 등장하는 “오스카 수상자는…(Oscar goes to…)”라는 말도 이때부터 생겨났다. 황금빛 트로피의 애칭인 오스카는 AMPAS의 비서 한 명이 트로피를 보고 “우리 오스카 아저씨를 닮았네”라고 한 데서 유래됐다.
1950년대 중반부터 시상식은 TV로 생중계되기 시작됐다. 초창기 12개였던 수상 분야는 오늘날 24개로 늘어났으며 200∼300명이던 시상식 관객은 5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세계 각국의 영화들이 경쟁하는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와는 달리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해 가장 뛰어난 미국 영화 위주로 상을 수상한다. 엄밀하게 말해 할리우드의 집안 잔치인 셈. 그래도 매년 3월만 되면 세계 100여 개국 10억 명의 눈은 할리우드로 향한다.
레드 카펫을 밟는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과 잠시도 쉬지 않고 눈과 귀를 자극하는 현란한 행사 진행. 아카데미 시상식이야말로 꿈의 공장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최고의 판타지인 셈이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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