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6집 음반을 내놓은 이후 10년 만에 컴백한 ‘X세대’ 형제 밴드 ‘015B’. 주민등록번호로만 보면 어느덧 이들도 기성세대다. 그러나 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에 동생 정석원(38)은 분홍색 티셔츠, 형 장호일(41·본명 정기원)은 체육복 차림으로 나타나 “요새 체력 때문에 장시간의 기타 연주가 힘들어요”, “늙으니 사진 찍는 게 점점 두려워요”라며 엄살을 부렸다. 애당초 점잖은 어른은 없었다.
▽정석원=“1990년대만 해도 조금만 튀면 가요계에서 주목받기 쉬웠어요. 라운지, 일렉트로닉 등 음악 장르도 세분화되고 청취자들의 음악 수준이 높아져 우리가 명함이나 내밀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장호일=“1990년대에는 직설적인 가사든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든 겁 없이 덤볐죠. 그에 반해 지금은 부동산, 혈압수치, 주식에 빠진 중년 같은 상투적인 주제만 만들 것 같아 겁나요.”
1990년 1집 ‘텅빈 거리에서’로 데뷔한 이들은 ‘아주 오래된 연인들’, ‘신인류의 사랑’ 등 감각적인 가사와 실험적인 사운드로 신세대들에게 인기를 얻었지만 1996년 그룹 해체를 선언했다. 쏟아지는 컴백 제의에 ‘불가’ 방침을 고수했던 이들에겐 해체만큼 컴백도 한순간이었다. 이가희 박정현 윤종신 등의 음반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정석원이 “내 음악을 남에게 맞춰 만드느니 차라리 내가 발표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
∇정=“골수팬들은 ‘015B’가 화석처럼 굳은 전설의 그룹으로 남길 바라죠. 하지만 ‘명반’ 소리 듣는 ‘웰메이드 음반’ 한 장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의 음악적 영향력이 과거만큼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냥 좋은 앨범 한 장을….”
#5B… 5월, 다시 날다(飛)
이들의 컴백 프로젝트는 ‘향수’와 ‘진보’다.
2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컴백 콘서트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날 발매되는 스페셜 앨범 ‘파이널 판타지’가 ‘향수’ 프로젝트. ‘파이널 판타지’ 앨범에는 ‘캐스커’, ‘W’, ‘페퍼톤스’ 등 밴드 7팀이 참여해 ‘015B’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했다.
▽장=“컴백 콘서트 티켓이 거의 매진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어요. 그분들이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해 보니 윤종신을 비롯해 이장우 조성민 등 ‘추억의’ 객원 가수들, 그리고 히트곡이더라고요.”
그러나 ‘향수’ 프로젝트는 여기까지다. 7월 발매되는 ‘015B’ 7집의 기본 방향은 힙합과 일렉트로닉이다. ‘다이나믹 듀오’, ‘버벌진트’ 같은 래퍼들과 가수 박정현, 미국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 크리스 보티 등이 참여하고 ‘015B’의 ‘개국 공신’과도 같은 윤종신과 신인 객원 가수들도 노래 부를 예정이다.
▽정=“‘넵튠스’나 ‘릴 존’ 같은 힙합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즐겨 들어요. 트렌드를 반영했다기보다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앨범에 담고 싶은 거죠. 물론 골수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지만 언제까지 1990년대 감성에만 의존할 수는 없잖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괜히 컴백한 건 아닐까?”, “아냐, 그래도…”라며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정석원. 그런 동생을 보며 형 장호일은 “요새 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이 더 심해진 것 같다”고 짐짓 놀리다가 금세 “몇 년 만에 녹음실에 오니 여기가 내 자리인 것 같다”며 맞장구를 친다. 진지한 분위기도 잠시, ‘대인기피증’에 걸렸다는 정석원이 볼멘소리로 또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아, 10년만 젊었어도 외모로 승부하는 그룹이 됐을 텐데….”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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