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거장들의 史觀 성찰적 비판… ‘우리시대…’ 학술대회

  • 입력 2006년 5월 23일 03시 00분


《한국 역사학계 거두(巨頭)들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비판적 평가의 대상은 실증사학을 확립한 이기백(1924∼2004), 한국 동양사 연구를 세계 반열로 끌어올린 민두기(1932∼2000), 토인비의 문명사관을 강조한 서양사학자 민석홍(1925∼2001), 내재적 발전론을 확립한 김용섭(1931∼ ) 연세대 명예교수 등 우리 역사학계의 대표적 ‘큰 바위 얼굴’들이다. 26, 27일 충북대에서 열리는 제49회 전국역사학대회의 ‘우리 시대의 역사가를 말한다’ 분과(한국사학사학회 주관)에서 이들 4인의 역사관에 대한 성찰적 비판이 발표된다.》

▽“한국 역사학의 랑케, 이기백”=김기봉 경기대 교수는 미리 배포된 ‘모든 시대는 진리에 직결되어 있다’라는 발표문에서 이기백을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 역사가 레오폴트 폰 랑케에 비유하면서, 한국 실증사학은 이기백의 역사학에서 정점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기백의 실증사학이 “민족사학과 식민주의사학은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는 인식 아래 “역사를 민족의 역사로 환원하는 국사(國史)에서 탈피, 세계 속의 한국 역사를 재구성하려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를 민족에 초역사적 가치를 부여하는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과 대비해 ‘진리지상주의’라 불렀다. 김 교수는 “강만길 선생은 역사학이 학문적 특권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던 데 비해 이기백 선생은 역사학은 학문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기백의 실증사학이 민족을 단위로 해서 한국사를 바라보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에 대한 각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사와 세계사의 관계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규정한 단재 신채호의 역사공식이 이기백의 실증사학에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

▽“역사학계의 숨은 신, 김용섭”=윤해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숨은 신을 비판할 수 있는가?’라는 발표문에서 김용섭 교수를 ‘한국 역사학계의 숨은 신’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조선시대에 근대적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고 있었다는 그의 내재적 발전론이 식민사학에 대응할 이론을 구축하지 못하던 한국사학계에 체계적 논리를 제공했고, 그 영향력으로 사학계 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성역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윤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이 식민사관의 타율/자율, 정체-후진/발전-진보라는 이항대립의 도식을 뒤집어놓은 데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反)식민사학적 식민사학’이라고 지적했다. 또 서구 근대를 전범(典範)으로 설정하고 한국사회의 발전 경로를 이에 입각해 증명하려 하는 강력한 목적론적 도식을 드러냄으로써 민족지상, 국가지상, 근대지상의 논리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윤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은 1980년대 이후 고착화의 과정을 밟아 나감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질문할 능력을 상실했다”며 “한국사학계는 위기를 위기 그 자체로 인식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민두기와 민석홍을 넘어=임상범 성신여대 교수는 실증에 집착한 민두기식 담론이 현실에 대한 과도한 ‘거리두기’를 조장해 역사 해석의 상상력을 제한했다고 지적했다.

육영수 중앙대 교수는 5·16군사정변을 맹비난하다 박정희 정권의 적극적 옹호자로 변신한 민석홍의 역사관에 대해 ‘서양 중심적 토대 위에 세운 위태로운 임시건물’로 후배들에게 새로운 역사의 집을 건축해야 할 과제를 남겼다고 평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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