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함, 거포 시대의 개막을 상징하는 이 최강의 고속 전함은 독일 해군의 상징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 해군은 1935년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세계 최고의 전함들을 건조했다. 1번 함인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제국 빌헬름 1세 당시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이름을 땄고 2번 함인 ‘티피츠’는 같은 시대 독일 해군 총사령관인 ‘알프레드 폰 티피츠’의 이름을 빌렸다.
전함에 장착한 무기도 놀랄 만한 것이었다. 주포인 38cm포 8문에 사용하는 포탄의 무게는 무려 800kg. 포탄은 초속 820m로 최대 35km까지 날아갔다. 주포 8문의 무게가 전함 전체 무게의 약 10%를 차지했다.
중량은 비스마르크가 4만1700t, 티피츠는 4만2900t이었으며 만재배수량은 약 5만 t에 달했다. 이런 무게에도 불구하고 30.1노트라는 쾌속을 자랑했다.
영국 해군은 크게 당황해 대규모의 함대를 동원해 독일 전함들에 맞섰다. 배수량에서 비스마르크와 비슷했던 순양전함 후드를 비롯해 신예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 킹 조지 5세, 항모 빅토리어스 등 전함 5척, 순양함 9척, 항공모함 2척을 동원해 북대서양에서 비스마르크를 포위했다.
비스마르크는 순양전함 후드를 격침시키고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크게 파손시켰다. 그러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격침당한다. 영국 해군의 집중포화를 맞아 함포를 비롯해 외부 구조물이 거의 모두 파괴됐다. 그래도 동력기관 등 내부는 대체로 정상적인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항공모함이 해군의 주력이 되는 시대로 변한다.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항공기들이 메뚜기처럼 달려들면 아무리 거대한 전함일지라도 대항하기 어렵다. 비스마르크, 야마토, 무사시 같은 거대 전함을 보유했던 독일과 일본이 결국 제공권과 제해권을 연합국에 내주고 패한 것도 달라진 해전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상대방을 알지 못한 채 내 힘만 믿고 자만한다면 결과가 뻔하다는 이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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