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몽골리안 벨트’의 길

  • 입력 2006년 5월 24일 03시 03분


현각(玄覺) 스님이 펴낸 ‘만행·萬行-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에는 그의 전생 이야기가 나온다. 벽안(碧眼)의 하버드대 학생이 ‘중’이 되려고 한국에 왔는데 어느 스님 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듣는 순간 목이 콱 메고 가슴이 막 아프더라는 것이다.

“스님, 제가 한국에 와서 어떤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막 나왔어요. 목과 가슴에서 막 슬퍼요. 이런 일 나에게 한 번도 없었어요.” 얘기를 듣던 스님이 현각에게 한번 흥얼거려 보라고 했다. 놀랍게도 그 노래는 애국가였다.

현각을 불법(佛法)의 세계로 이끈 숭산(崇山·2004년 입적) 큰스님이 나머지 의문을 풀어 준다. 현각은 전생에 일본군의 총에 맞아 죽은 독립투사였다. 죽을 때 너무나 한이 맺혀 ‘아, 나는 다음 생에는 아주 강한 나라에 태어나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조국을 위해 살겠다’고 소원을 빌었다. 그래서 애국가만 들으면 가슴이 막히고 눈물이 나는 것이라고 큰스님은 말해 준다.

오래된 일이지만 한줄 한줄 읽어 가던 내 눈도 붉어졌고, 목젖도 뜨거워졌다. 변방 소국의 업(業)이 가슴에 사무쳤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사무침은 자기 모멸감으로 변해 갔다. 오직 권력 하나만을 잡기 위해 손바닥만 한 초가삼간이 불타는 것도 개의치 않는 정치인들, 정치인들의 ‘하청’을 받아 그 무슨 진보가 어떻고 보수가 어떻고 하면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지식인들, 그런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닮아 ‘야차(夜叉)’ 같은 얼굴로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모’ ‘×사모’들. 급기야 문구용 커터로 야당 대표의 얼굴을 그어 대는….

좁은 땅 위에서 벌어지는 그런 아수라장을 보면서 자기 모멸감은 더욱 깊어갔고, 그에 비례해 ‘한(韓·Khan)의 강역(疆域)’에 대한 허기도 깊어갔다. 사방을 둘러봐도 답은 몽골뿐이었다. 인구를 분산해 성정(性情)을 회복하고, 주변 강대국들의 21세기형 패권게임에 맞서기 위해서는 ‘몽골리안 벨트’를 만드는 길뿐이라고 조바심쳤다.

일각에선 ‘대한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of Great Khan)’이나 국가연합을 시도해야 한다는 ‘그랜드 디자인’까지 나왔다. 그러나 아직은 ‘한여름 밤의 꿈’이어야 한다고 믿었다(2005년 7월 20일자 ‘광화문에서’).

남북통일처럼 어느 날 갑자기 올 수도 있고,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고, 말 그대로 백일몽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더구나 정부나 정치인들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될 터….

노파심 탓일까. 대선 주자들 사이에 ‘한-몽골 국가연합론’이 솔솔 새어 나온다고 한다(신동아 6월호). 물론 과장된 얘기일 것이다. 그래도 허탈하다.

정치인들이 ‘국가연합’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몽골리안 벨트’는 안보게임, 정치게임으로 전락하고 만다. 다음 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나가야 한다. 그 업이 쌓이고 또 쌓이면 우리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공동체로 환생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생전에 한번도 뵙지 못했지만, 문득 숭산 큰스님이 그립다.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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