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7>나는 달린다

  • 입력 2006년 5월 25일 03시 03분


《사람들은 한 시간 정도 달리고 나면 지칠 대로 지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좋은 휴식이 될 수 있다. 달리기는 사실 힘든 일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몸 전체를 긴장시키는 일이다. 몸속의 모든 내장 기관이 활발히 움직이게 되고 산소를 가장 말단의 모세혈관까지 보내 주기 위해 허파와 심장은 더욱 세차게 활동하게 된다. 그럴 때 머리는 명상을 할 수 있는 평정 상태에 놓인다. 바로 이때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마치 스스로 기어 나오듯 연속적으로 떠오른다.―본문 중에서》

뚱보 정치인에서 날렵한 마라톤 주자로 변신했던 전(前) 독일 외교장관 요슈카 피셔는 달리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을 향해 달린다. 달리기는 나에게 일종의 명상이다.”

정말 많은 사람이 달린다. 다이어트를 위해, 건강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저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그들은 하나같이 달리기의 또 다른 매력에 빠지게 된다. 도대체 달리기 안에는 어떠한 매력이 숨겨져 있기에 많은 사람이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나는 달린다’는 전 독일 외교장관 요슈카 피셔의 달리기 자서전이다. 네 번째 아내와 이혼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삶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다. 그래서 112kg의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달리기를 하는 것으로 삶의 개혁을 시도한다. 달린 지 1년 만에 37kg 감량에 성공, 그리고 마라톤에 도전해서 3시간 40분대에 완주한다. 이 책은 피셔의 달리기를 통한 자기 개혁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내가 달리기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벌써 18년째다. 하지만 내가 달리기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96년 춘천마라톤과 1997년 동아마라톤에서 우승할 때까지도 난 내가 달려야 하는 뚜렷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무조건 이기기 위해 달릴 뿐이었다. 더는 달려야 할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1997년 운동화를 벗어던졌다. 별 미련도 없었다. 그 이후로는 운동화도 쳐다보지 않았고, 운동장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 지긋지긋한 달리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달린다’를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달리기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요슈카 피셔의 달리기가 체중 감량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에서 달리기는 결코 큰 의미가 되지 못했을 것임을 알게 됐다. 그가 지금까지 달리기를 즐기면서 자신만을 위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달리기 안에 숨겨진 즐거움과 행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승부가 아닌 삶 자체로서의 달리기, 나를 찾는 여행으로서의 달리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던 달리기에 대한 애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다시는 신지 않겠다고 처박아 놓았던 운동화를 꺼내 신게 되었다.

세월이 갈수록 달리기는 내 인생의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달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왜 그토록 달리기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달리기는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승리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달리기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목적이 된 것이다. 체중 감량을 위해 시작했던 요슈카 피셔의 달리기가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달리기 자체가 목적이 된 것처럼.

방선희 전 국가대표 마라토너 대한육상경기연맹 사회체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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