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레리뷰]엽기… 잔혹… 31일 개봉 ‘구타유발자들’

  • 입력 2006년 5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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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공포영화 ‘가발’로 장편 데뷔한 원신연 감독의 두 번째 영화 ‘구타유발자들’. 사진 제공 디어유
지난해 공포영화 ‘가발’로 장편 데뷔한 원신연 감독의 두 번째 영화 ‘구타유발자들’. 사진 제공 디어유
단편·독립영화를 만들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인 신인감독이라면, 그의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장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능한 신인들은 코미디나 공포영화처럼 딱 떨어지는 장르를 데뷔작으로 골라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 준 뒤, 벼르고 별러 왔던 자신의 예술관을 두 번째 작품에 쏟아 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유망한 신인감독의 두 번째 장편의 흥행성적표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비록 화려한 캐스팅에 성공했을지라도, 감독이 대중보다는 자신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탓이다. 단편 ‘빵과 우유’로 평단의 눈길을 받았던 원신연 감독이 장편 데뷔작인 공포영화 ‘가발’(2005)에 이어 내놓은 ‘구타유발자들’은 촉망 받는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 빠지기 쉬운 이런 징크스를 되풀이하는 것만 같다.

바람둥이 성악교수 영선(이병준)은 새로 구입한 흰색 벤츠 승용차에 제자 인정(차예련)을 태우고 교외 드라이브를 떠난다. 하지만 신호 위반으로 교통경찰 문재(한석규)와 마주치면서 그의 하루는 꼬이기 시작한다. 인적 없는 강가에 차를 세운 영선은 인정에게 음흉한 속내를 드러내지만, 인정은 도망친다. 이어 영선의 자동차에 ‘매를 방망이로 때려잡는’ 으스스한 남자 오근(오달수)이 접근한다. 한편 인정은 우연히 마주친 순박한 청년 봉연(이문식)의 오토바이에 올라타면서 스산한 기운을 느낀다.

‘구타유발자들’은 원시적 동물성이 물든 핏빛 언어와 기호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서 ‘인격’이란 무의미하며 오로지 인간은 피부라는 껍데기와 육체라는 살덩이, 그리고 뇌라는 단백질 덩어리를 가진 동물에 불과하다. 영화는 외딴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약육강식의 세계와 먹이사슬의 숙명을 심장이 터질 듯한 압박감으로 담아낸다. 영선과 인정이 느끼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은 비단 벤츠를 모는 부유층이나 힘없는 젊은 여성이 아니더라도, 그저 법과 제도와 배움과 인륜의 힘이 닿지 못하는 동물의 세계에 내던져진 평범한 인간 누구라도 느낄 법한 피의 지옥도인 것이다. 흰색 벤츠가 갖는 아우라도, 교수의 위선도 이런 정글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구타유발자들’의 문제는 이런 독립영화적 감수성이 113분짜리 대중 상업영화에 필요한 보편적 화법으로 수렴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영화는 생삼겹살에다 통마늘 두 쪽을 얹은 뒤 “먹어” 하고 교수에게 들이대는 오근처럼 인간의 본능이 갖는 날것 그대로의 ‘살(肉) 맛’을 관객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개성 만점의 배우들이 연기를 통해 빚어내는 의도적인 ‘비호감’이 관객이 즐길 만한 ‘다수’의 언어로 치환되지 못한 채 ‘진짜 비호감’ 그대로 다가오는 데서 느껴지는 당혹감이란….

대중 상업영화의 약삭빠른 문법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이런 태도는 원초적 이미지와 일정한 미학적 성취를 보여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에 앞서 일단 관객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든다. 막판에 불쑥 얼굴을 드러내는 ‘교훈적’인 주제도 이런 불편한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는 불화를 일으키는 쪽이다.

잔혹한 것과 불편한 것은 다르다. 잔혹성은 다수의 기호가 될 수도 있지만, 불편한 건 어디까지나 소수적 취향이다. 생쥐를 씹어 먹고, 머리를 깨지도록 때리고, 쥐약 분말을 목구멍에 털어 넣는 모습은 충격적이기에 앞서 ‘꼭 저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관객은 폭력을 즐긴다. 그러나 폭력의 한가운데 던져지기를 원하진 않는다. 31일 개봉. 18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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