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같은 사람.’ 우리는 흔히 원칙을 정확히 지키려는 사람에게 이 말을 사용한다. 다양한 현실을 융통성 있게 포용하지 못할 때를 빗대기도 한다.
그러나 원본을 알아야 다양성도 가능하다. 원작을 모르면 고전 인용의 명칼럼도 밍밍하고, 패러디나 개그를 보아도 웃을 수 없다. 창의성과 유머는 모두 원리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 구술에서 최고의 추천도서가 교과서인 까닭이 바로 원칙의 파워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원칙으로 복잡한 현실을 걸러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물의 특징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교하기’와 ‘대조하기’이다. 이 책은 프랑스를 거울 삼아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추려냄으로써 ‘프랑스적인 것’을 통해 우리 자신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체면에 민감하고 프랑스인은 양심에 의해 제어된다.” 이 책의 저자가 간단하게 압축한 말이다. 체면은 남의 눈에 비친 모습을 중시하는 사고이다. 우리는 자동차를 사거나 대학을 고를 때, 골프를 칠 때 까지도 사회의 눈을 의식한다. 이런 토양에서는 충이나 효, 관용 같은 가치가 장려될 때 인본주의가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인은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선과 악의 기준으로 행위를 결정한다. 양심의 존중은 합리성의 기반이 되지만, 종교적 신념이 대립할 때는 전쟁까지도 불사한다. 같은 ‘민주공화국’이라도, 한국과 프랑스는 개인에게 적용되는 사회문화적 룰의 방식이 다른 셈이다.
평등의 가치는 어떻게 적용될까. 시민혁명을 겪었던 나라답게 프랑스는 특권과 차별을 철저히 배격한다. 그런데도 ‘그랑제콜’과 같은 특수대학 출신자들이 상류층을 독식해도 당연하게 여긴다. 교육에서는 철저하게 평등주의적인 무상교육을 시키지만, 능력의 차이로 벌어진 결과는 합리적 불평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사교육에 휘둘리는 우리로서는 그 시스템이 새롭게 다가온다.
인권 문제도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아프리카 출신의 이민자들, 사회적으로 증가하는 장기 실업자와 노숙자, 늘어가는 노인 인구는 프랑스에서도 골치 아픈 사안이다.
문화 비교에서 현상만을 꿰어 맞추면 자의적 해석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 책에서처럼 단순한 현상도 역사적 뿌리까지 따져보는 추리가 필요하다. 프랑스인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공화국 전통과 시스템을 통해 한국적인 것을 더욱 선명하게 고민해 보길 바란다.
권희정 상명대 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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