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와 주한 프랑스대사관 등은 다음 달 2, 3일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친일, 대독 협력과 기억의 정치학’을 개최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일제하 한국의 친일과 나치 점령 기간 프랑스의 대독 협력의 역사와 기억 문제를 놓고 두 나라 역사가들 사이의 최초의 대화의 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기간은 35년이고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기간은 4년. 세월의 길이에 있어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모범 사례로 손꼽혀 왔다.
하지만 최근 그러한 인식에도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피점령기에 나치의 반(反)유대주의 정책을 지지했던 프랑스 대다수 국민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일부 나치협력자에 대해 인민재판식의 처형을 가했다는 비판이 대두했기 때문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런 프랑스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현재 국가 주도로 펼쳐지고 있는 한국 과거사 청산의 문제점을 진단해 보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 현대사연구소 앙리 루소 소장은 미리 배포한 발표문에서 프랑스에서 나치 독일점령기에 대한 기억이 ‘망각→기억 회복→과잉 기억’의 단계로 전개되면서 “과거에 대한 기억이 공공영역에서 끝나지 않는 논쟁과 충족시킬 수 없는 요구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통스럽고 부담스러운 기억을 묻어둔 채 ‘저항의 역사’로 신화화했지만, 그 신화를 대표하는 샤를 드골이 죽은 뒤 침묵을 강요당하던 증언이 터져 나오면서 억압됐던 기억의 분출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루소 소장은 현재 이 문제는 프랑스 일국의 틀에 묶이지 않고 국제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점령기 범죄를 조국의 배신자가 아니라 인권의 이름으로 단죄하게 된 것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 나치즘의 가장 중요한 희생자로 여겨졌던 ‘민족-국가’가 반세기가 지난 현재에는 가해자로 간주되는 역전이 발생하고 있으며, 점령기 범죄를 망각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분열과 대립을 피할 ‘정당한 기억’의 모색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성균관대 윤해동 연구교수는 ‘친일협력자 조사의 윤리학’이라는 발표문에서 광복 후 한국의 일제하 협력자 논의가 ‘미봉기→망각기→재론기’의 단계를 거치며 현재는 과거청산근본주의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미봉기는 이 문제가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을 우려해 덮어 두자는 논리가 우세했고, 망각기는 의도적인 망각의 전략을 통한 국민화가 이뤄졌다면 현재의 재론기는 과거에 억눌렸던 논의들이 신화화 도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이런 현상이 ‘역사 청산이 안 돼 한국사회 발전이 저해된다는 단선적 역사관→국민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과거 청산이 꼭 필요하다는 도덕화→부작용이 아무리 크더라도 과거 청산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강화된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신화화 도덕화한 과거청산 논의는 수십만 혹은 수백만 명에 이를지도 모를 친일부역자를 선정하는 과정에 국가가 개입함으로써 정치화가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윤 교수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와 지적 개입을 통해 ‘과거의 정치’를 ‘생성의 정치’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파리정치대 장 피에르 아제마 교수는 레지스탕스 신화가 어떻게 대두, 구축, 붕괴됐는가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고, 고등사범 올리비에 비비오르카 카샹 교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친 연합군에 대한 노르망디 사람들의 해방군과 점령군의 양면적 기억이 어떻게 갈등했는지를 보여 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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