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의 ‘갈무리’가 흐르면 무용수들은 음악에 맞춰 서서히 움직인다. 자의(自意)를 상실한 듯한 한 남자를 두 남자가 양쪽에서 붙들고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남자의 등에는 칼이 꽂혀 있다.(‘칼’)
현대무용단 댄스씨어터온을 이끄는 안무가 홍승엽이 2년 만에 신작 ‘阿Q(아큐)’를 내놓았다. 이번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어리석음’. 2년 전 문화예술진흥원(현 문화예술위)이 주는 ‘올해의 예술상’ 우수상(무용 부문)에 선정됐지만, “심사위원의 절반은 현장에 오지 않고 비디오로 심사했다”며 수상을 거부해 파문을 일으켰던 그였던 만큼 주제부터 관심을 모은다.
“(그 일 때문에) ‘어리석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그 이전부터 구상했던 겁니다. 중국 작가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모티브를 따왔죠. ‘아큐정전’을 한 단어로 축약하면 결국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했어요.”
작품에서는 ‘꽃’ ‘칼’ 그리고 ‘고깔’을 각각 소품으로 사용한 세 가지 이야기가 ‘어리석음’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하나씩 펼쳐진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했다는 평을 듣는 홍승엽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안무로 가볍게 풀어놓는다. 음악 역시 클래식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하게 사용된다.
‘꽃’에서는 자석을 이용해 무용수들이 서로의 등에, 목에, 옆구리에, 온몸에 장미꽃을 꽂는다. 마치 비수처럼. 사랑 혹은 유혹(꽃)은 그렇게 치명적이다. 치명적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꽃’을 거부하지 못한다. 한 여자 무용수의 몸은 온통 장미로 뒤덮인다.
‘꽃’은 유혹적으로, ‘칼’은 강렬하고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울타리를 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아가는 현대인의 어리석음을 비판한 ‘고깔’은 다소 추상적이다. 무용수들은 고깔을 머리 대신 얼굴에 쓰고 새 부리처럼 뾰족한 끝을 흔들며 춤을 춘다. 6월 9일 오후 8시, 10일 오후 4시. LG아트센터. 2만∼4만 원. 02-2005-011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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