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모스크바방송 교향악단은 첫 곡인 차이콥스키 ‘사계’ 중 4월 아네모네, 6월 뱃노래, 10월 가을의 노래, 12월 크리스마스를 통해 온화한 러시아 서정주의를 유연하게 들려줬다. 빼어나게 조율된 서정성은 페도세예프와 오케스트라의 30년간의 합주가 빚어낸 역사를 느끼게 했으며 왜 페도세예프가 모스크바뿐만이 아니라 빈 심포니커를 오랫동안 이끌며 우아한 빈 청중을 매료시켰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임동민은 깨끗하고 절제된 페달 사용과 깔끔한 건반 터치로 산뜻하고 젊은 라흐마니노프를 긴장감 있게 연주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근력과 라흐마니노프 곡 해석에 대한 숙제를 안게 됐다.
차이콥스키에서 서정성을 들려준 모스크바방송 교향악단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에서는 웅장하고 폭발적인 사운드와 확고한 음악성으로 오케스트라를 장악하는 페도세예프의 카리스마를 확인시켜 주었다. 대륙적 깊이와 넓이를 갖춘 거침없고 담백하며 속 시원한 모스크바방송 교향악단의 쾌주는 청중에게 음악적 환희를 제공했다. 금관악기군 뒤 오케스트라 맨 뒷줄 벽에 9대의 콘트라베이스를 배치해 러시아 음악 특유의 저음의 매력을 발휘하게 한 것도 세종문화회관이라는 큰 공간을 충분히 의식한 민첩하고 기동력 있는 선택이었다.
이 오케스트라는 앙코르 곡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즐거운 면모를 만끽할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왈츠와 행진곡을 골라 교향곡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기쁨을 선사했다.
장일범 음악평론가·KBS 1FM ‘장일범의 음악풍경’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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