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대륙의 저음을 내뿜다…모스크바방송 교향악단

  • 입력 2006년 6월 2일 03시 06분


흔히 러시아 음악의 특징이라고 하면 흙냄새 나는 박력과 격정을 첫손에 꼽는다. 그래서 다이내믹함 뒤에 유유히 흐르고 있는 러시아적 서정은 잊기 일쑤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가 이끄는 모스크바방송 교향악단은 1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아 ‘격정과 서정’이라는 러시아 음악의 두 가지 특징을 유감없이 보여 줬다.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모스크바방송 교향악단은 첫 곡인 차이콥스키 ‘사계’ 중 4월 아네모네, 6월 뱃노래, 10월 가을의 노래, 12월 크리스마스를 통해 온화한 러시아 서정주의를 유연하게 들려줬다. 빼어나게 조율된 서정성은 페도세예프와 오케스트라의 30년간의 합주가 빚어낸 역사를 느끼게 했으며 왜 페도세예프가 모스크바뿐만이 아니라 빈 심포니커를 오랫동안 이끌며 우아한 빈 청중을 매료시켰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임동민은 깨끗하고 절제된 페달 사용과 깔끔한 건반 터치로 산뜻하고 젊은 라흐마니노프를 긴장감 있게 연주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근력과 라흐마니노프 곡 해석에 대한 숙제를 안게 됐다.

차이콥스키에서 서정성을 들려준 모스크바방송 교향악단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에서는 웅장하고 폭발적인 사운드와 확고한 음악성으로 오케스트라를 장악하는 페도세예프의 카리스마를 확인시켜 주었다. 대륙적 깊이와 넓이를 갖춘 거침없고 담백하며 속 시원한 모스크바방송 교향악단의 쾌주는 청중에게 음악적 환희를 제공했다. 금관악기군 뒤 오케스트라 맨 뒷줄 벽에 9대의 콘트라베이스를 배치해 러시아 음악 특유의 저음의 매력을 발휘하게 한 것도 세종문화회관이라는 큰 공간을 충분히 의식한 민첩하고 기동력 있는 선택이었다.

이 오케스트라는 앙코르 곡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즐거운 면모를 만끽할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왈츠와 행진곡을 골라 교향곡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기쁨을 선사했다.

장일범 음악평론가·KBS 1FM ‘장일범의 음악풍경’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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