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소로 알려진 곳이 거의 없는 이 거리의 회색 건물(뉴욕 마켓 센터)에 100여 명이 줄을 서 있다. 건물에는 특이한 간판도 없고, 평범한 사무실만 있다. 겉으로 봐선 무슨 일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이곳에 뉴욕의 숨겨진 명소가 있다. 20층 건물 옥상에 있는 루프톱(Rooftop) 바 ‘230 피프스(Fifth)’가 그곳. 줄을 선 뉴요커들은 이곳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뉴욕 마켓 센터는 평범한 오피스 빌딩인데도 ‘230 피프스’ 덕분에 명소가 됐다.
최근 개장한 이곳은 밤에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고 즐기는 뉴요커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바의 이름은 이 건물의 주소.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만고만한 오피스 빌딩의 숲에서 길을 잃지 말라는 ‘주문’이다.
이곳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규모가 크지 않은 건물이 많은 맨해튼에서 보기 드물게 400여 평의 널찍한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북쪽으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동쪽으로 메트 라이프 빌딩, 서쪽으로는 뉴저지를 볼 수 있는 360도 열린 공간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뉴욕에서 이처럼 전망이 탁 트인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흔히 볼 수 없는 야자수를 심어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고 있다.
보라색 계열의 고급 인테리어가 까다로운 뉴요커의 눈을 사로잡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바를 만든 스티븐 그린버그 씨는 유명한 미술품 컬렉터다. 이곳이 뉴욕에서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루프톱 바를 찾은 고객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최고의 매력은 하루 중 어느 때에 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하늘과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은 낮에는 한낮의 햇빛을, 해질 무렵에는 일몰의 빛을, 늦은 밤에는 도시의 야경 등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그림을 제공한다.
‘230 피프스’ 외에도 다운타운 서쪽 미트 패킹의 간스부트 호텔에 있는 플런지도 명소가 되고 있다. 오전 11시 이튿날 오전 1시까지 영업을 하는데 낮에는 브런치를 먹으러 온 관광객과 투숙객들로, 밤에는 젊은 뉴요커들로 넘쳐 난다.
하늘과 가까운 옥상이어서인지 음료의 가격도 높은 편이다. 여느 바에서 5달러(약 4730원) 하는 맥주가 이곳에서는 플라스틱 컵 한 잔에 12달러를 넘는다. 뉴욕의 루프톱 야경을 보는 비용이 더해진 것일까. 8달러 정도인 마티니도 20달러를 받는다. 플라스틱 컵에 음료를 담아 파는 것은 건물 아래를 지나가는 행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 듯하다. 간스부트 호텔은 루프톱 바의 수입이 호텔 룸에서 나오는 수입을 넘어선 적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빌딩 숲을 이루는 맨해튼에서는 옥상의 가치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맨해튼 지역 유명 호텔의 루프톱 건축을 담당했던 스티븐 제이콥스 씨는 “루프톱은 맨해튼에서 저(低)개발된 공간이자 잠재력을 가진 부동산”이라고 말했다.
뉴요커들은 ‘루프톱 비치’를 즐긴다. 여름이 오기가 무섭게 비치 의자와 대형 수건, 선탠 로션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건물 숲을 배경으로 일광욕에 나선다. 옥상에서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은 뉴욕에선 흔한 일이다.
간스부트와 허드슨 호텔을 비롯해 뉴욕의 호텔들은 옥상에 루프톱 바를 두고 있다. 허드슨 호텔은 맨해튼 서쪽에 있어 허드슨 강의 경치를 보며 수영을 즐길 수 있다. 루프톱 비치를 즐기기 위해 비싼 방 값을 지불하는 이도 적지 않다.
간스부트 호텔에서 만난 대학생 모건 커티스 씨와 친구 엘리 쿠겔 씨는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루프톱에 있는 풀과 멋진 전망을 즐기기 위해 하루 450달러의 방 값을 주고 소풍을 왔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건물 숲을 이루고 있는 뉴욕은 하늘을 향해 빼곡하게 치솟은 건물 사이를 매일 걸어야 하는 곳이다. 엄청난 땅값과 집값 때문에 작디작은 공간과 씨름해야 하는 것은 뉴요커들에게 거의 일상이다.
거대한 빌딩의 끝에 매달린 것에 불과하지만, 루프톱은 뉴요커들에게 작은 비용으로 탁 트인 공간과 하늘을 선사하는 해방구인 셈이다.
뉴욕=박새나 통신원(패션디자이너) sena.park@g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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