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책 여행]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 (8)

  • 입력 2006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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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우리가 어떤 것이든 제대로 본다면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란 없다고 가르친다.

일찍이 붓다는 우주를 무수하게 다양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짜인 거대한 그물에 비유했다. 그 보석들은 무수한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석 하나 하나는 그 거대한 그물 안에 있는 다른 모든 보석들을 반사하고 있으니, 하나의 보석은 다른 모든 보석들과 하나인 것이다.

불자들은 이렇듯 독립된 특성의 부재를 ‘공(空)’이라 일컫는다.

티베트 불교의 위대한 스승 소걀 린포체는 ‘티베트의 지혜’(민음사·1999년)에서 나무의 예를 들어 그 오래된 지혜를 이리 전한다.

“한 그루의 나무를 보라. 그것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나무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무는 우주로까지 뻗어나가는 지극히 미묘한 관계의 그물 속으로 용해되는 것을 알게 된다.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나무를 흔드는 바람, 양분을 공급해 주고 나무를 지탱해 주는 토양, 사계절과 날씨, 달빛과 별빛 그리고 햇빛…. 이 모든 것이 나무의 일부를 이룬다. 나무는 어느 한순간도 다른 어떤 것들로부터 분리된 적이 없으며, 순간마다 그것의 품성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나무의 개별적인 정체성은 ‘비어 있고’, 관계로 ‘가득 찬’ 움직임만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은 신비주의 사상의 핵심이다. 이 우주에 분리란 없으며, 있다면 오직 우리의 환상만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주의 모든 것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존재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개념은 과학의 패러다임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것은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의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물리학의 상식에 어긋난다. ‘국소 발생 원리(The principle of local causes)’는 물리학의 정설이다.

그러나 원자 이하의 세계에서 ‘쌍(雙)으로 움직이는’ 입자체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과율(因果律)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입자는 서로 떨어져 있어도 상호작용을 한다. ‘빛 신호’로 연결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즉각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A지역에 있는 입자는 언제 어디서나 B지역에 있는 입자의 상태를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두 개의 떨어진 것들이 이토록 빨리 소통할 수 있을까?

일개의 업적으로는 물리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벨의 정리’(1964년)는 양자이론의 통계적 예측이 정확하다면 국소 발생 원리가 틀릴 수도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물체들의 독립적인 상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봄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의 ‘개개의 부분’은 서로 밀접하게,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 세계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부분들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는 고전적 관념을 부정하는, 세계는 부서지지 않는 전체라는 새로운 관념을 갖게 되었다.”

부서지지 않는 전체! 이것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 아닌가. 우주 만물의 ‘상즉상입성(相卽相入性)!’

14세기 티베트 승려 롱첸파는 이렇게 설파했다. “그 어떤 것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 밖의 어디에서 발생하고 있는 어떤 것에 달려 있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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