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양화가 김태호(서울여대 교수) 초대전의 전시장은 뭐라고 꼭 집어 설명하기 힘든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딱히 한 가지 색으로 규정짓기 어려운 색이나 아무 형태도 그려지지 않은 화면은 그렇다 치고, 어쩌다 보이는 흐릿한 형상도 그 정체성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
전시 제목인 ‘Heure entre chien et loup(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프랑스어로 황혼을 뜻한다.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는, 낮도 밤도 아닌 애매모호한 시간의 경계를 가리킨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사물의 윤곽이 희미해지는 시간, 중년에서 황혼으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현실에서 이상향으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 여기서 비롯되는 삶의 ‘모호함’, 거기서 응축되는 슬픔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더불어 그는 환경에 따라 자기를 변신해 가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서글픈 초상을 카멜레온의 이미지로 표현하기도 한다.
작가는 특정한 장소를 찾아가 자신이 머릿속에 구상한 이야기들을 마치 영화감독처럼 자신이 직접 만든 세트와 연출된 인물로 재현한 뒤 사진을 찍는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의 눈에 연출한 세트처럼 보이는 것은 자연 배경이고,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되레 작가가 연출한 모습이라는 점.
판타지와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다루는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선 진짜처럼 보이는 것들이 오히려 거짓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깨우쳐 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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