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인간을 살게 하는 힘이라는 말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열정은 자신이 만들어낸 환각을 향해 가는 자기 체면이 아닐까. 알 수 없는 정체로 빠져들게 하는 보이지 않는 흡인력, 열광과 몰입.
스포츠를 국가가 국민을 완벽하게 동원하는 환각체험이라 말한다지. 그렇지만 스포츠가 아니라면 이 ‘미칠 것만 같은’ ‘미치고 싶은’ 그러나 ‘미쳐지지 않는’ 이 광적인 문명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인간은 환각의 동물인 것이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스포츠의 열혈 팬들에 대한 이야기다. 1982년. 한국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학생들은 ‘왜, 굳이 저런 긴 문장을 달달 외우게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국민교육헌장을 죽도록 외운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소년은 “Boys, be ambitious!”라고 책상 위에 써서 붙여 놓는다.
소년에게 알파벳으로 야망을 가르치던 시절. 하여 1982년에 한국은 거국적으로 프로야구가 창립된다. 국민은 열광한다.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어린이 팬클럽 회원에 가입한다. 아, 그러나 어쩌란 말이냐.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가 있어야지.”
소년이 살고 있는 인천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연고지.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2년 창립 첫해 10승 30패 승률 0.250을 기록하며 1985년 끝나는 순간까지 언제나 꼴찌를 면치 못한다. 삼미 슈퍼스타즈 스포츠 가방을 메고 삼미 슈퍼스타즈 야구 모자를 쓰고 잠바를 입고 다니던 팬클럽 어린이는 야구장에서 8 대 2, 10 대 1로 뒤지는 경기를 보면서 생각한다. ‘한 민족끼리 이래도 된단 말인가?’ 아이고, ‘내 팔자야!’
그래서 소년은 생각한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그들이 OB팀이었다면, 아무리 미련퉁이 같더라도 OB를 응원하는 지역에 살고만 있었다면…. 그렇다. 그들은 ‘야망을 가져야 할 소년’의 성장기에 그렇게 소속에 대한 지독한 좌절감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으리.
박민규의 소설 속에서 1980년대는 정치적 역사적 과부하 때문에 은폐되어 있던 일상과 문화 기억을 복원한다. 최루탄과 화염병과 물고문과 분신자살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있었다. 혜은이의 새벽비, 못 찾겠다 꾀꼬리, 슈퍼맨….
‘죽을 쑤는’ 삼미의 경기를 보며 소년은 속으로 외친다. “어쩌면 저건 축구인지도 몰라.” 능청과 냉소, 위트와 유머의 문장들은 독자를 포복절도하게 한다.
김용희 문학평론가·평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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